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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22.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24)

-아름답고 장엄한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 -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은 마드리드 교외에 소재한 작은 도시이다. 이곳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발권하며 보았더니 아토차 역에서 1시간 7분 소요되는 것으로 나온다. 엘 에스코리알은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Monasterio de El Escorial)으로 유명하다. 2000년 초 마드리드에서 거주할 때 한 번 가보았지만 기억이 희미하다. I’m


 아토차 역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해당 교외선(C-8a) 플랫폼에 들어갔는데 10시에 기차가 들어온다. 나는 지하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승차했다. 그런데 출발하고 물어보니 이 기차는 엘 에스코리알행이 아니고 세르세디야(Cercedilla) 행인 C-8 노선이다. 순간 당황했으나 교외선 지도를 열어 자세하게 보니 C-8 노선과 C-8a 노선은 아토차 역에서 비얄바(Villalba) 역까지는 같고 여기서 엘 에스코리알과 세르세디야로 갈린다. 그래서 1시간 후 비얄바 역에서 하차하고 30분 뒤에 기차를 바꿔 타고 엘 에스코리알에 도착했다. 실수를 한 번하고 나서 교외선 맵을 자세히 보게 되니 교외선 운행 방식이 대충 이해된다.



 교외선에서 보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풍경은 좁은 땅에서 살아온 나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넓은 땅이 있었더라면.... 푸른 목초지에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데 승객에게 물어보니 도토리나무라고 한다. 이 도토리들은 흑돼지들의 사료로 사용된다. 이  도토리를 먹고 자란 흑돼지들의 엉덩이와 다리 부위는 그 유명한 스페인 하몬(Jamon)이 된다.



 엘 에스코리아 역은 조촐했다. 그런데 철로 플랫폼이 지하에 있는 것같이 낮은 곳에 있어서 나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러니까 반대로 보면 지상 건물의 조그만 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야 역사가 나온다. 화장실이 유료화장실이고 남녀공용 1개로 매우 불편하다. 스페인 기차역은 화장실이 대체적으로 불편하다.



 역사에서 구글 맵으로 수도원까지 거리를 측정해 보니 1.7 킬로미터이다. 걸어서 가기로 했다. 우선 역사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가서 화장실도 가고 목도 축였다. 조촐한 동네 카페이다. 주인장 여성과 동네 사람이 농담 따먹기 대화를 정겹게 하고 있다.



 카페에서 나와 구글 맵을 따라서 몇 분 가다 보니 상당히 커 보이는 공원을 가로지르라는 것 같다. 입구에는 ‘돈 카를로스 왕자의 조그만 집(Casita de Principe Don Carlos)’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들어가 보니 매우 넓은 공원이 나온다. 풍경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안에 있는 집도 조그만 집이 아니고 저택이다.



 저택에서 위쪽으로 긴 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대강 7~8백 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길과 주변 풍경이 기가 막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가로수들이 이어지고 양쪽에 펼쳐진 푸른 숲이 잘 어우러져 잔잔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런 가로수 길을 걸을 수 있다니... 행복감이 느껴진다.



 이 길이 끝나고 공원 부지를 벗어나자 돌로 잘 다듬어진 길이 수도원까지 이어진다. 깔끔함이 느껴지는 오르막길 끝에 수도원의 모습이 장엄하게 들어온다. 과다라마 산맥 끝자리에 건설되었다고 론리 플래닛 북에 쓰여 있더니만 과연 멀리 산맥의 등성이가 보인다.



 수도원의 정원도 깔끔하고 아름답게 정리되어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아내는 자기는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나 혼자 들어가서 마음껏 구경하라고 한다. 입장료는 14유로이다. 비싸게 받는다는 생각을 하며 입장한다. 그런데 입장한 후에 생각해 보니 65세 이상은 경로할인이 가능한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수도원은 돌로 건설되었다. 건물 안 기온이 외부와 다르다. 서늘하다. 그 규모가 수도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크다. 수도원 안의 성당은 관광객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안내표시판을 따라가며 회랑과 방에서 보는 많은 종교화는 나 같은 문외한에게도 대단하게 보인다. 천정화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시간이 없어 대강 볼 수밖에 없다.



 수도원 내의 왕립도서관은 계단을 따라 한참 오른 후 들어갈 수 있는데 그 화려함이 대단하다. 내가 알 수 없는 장서들이 벽에 설치된 책장에 예술품같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고 지구본을 살펴보면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당시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어 흥미롭다.



 한참 돌아보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한다. 배가 고프다고... 바로 어제의 기억도 있고 해서 빨리 나가야 한다. 그런데 아직 안내표지판 끝도 따라가지 못했으니 주마간산 격이라도 보기는 봐야 한다. 대충 서둘러 보고 수도원 밖에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수도원 외곽 거리에 있는 식당가를 이미 봐놓았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구먼 아내의 눈에는 보였던 모양이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많은 카페-레스토랑이 있다. 나는 그중 호텔이 운영하고 편해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오늘의 메뉴(Menu del Dia)’를 추천한다. 음료를 포함한 전식, 본식, 후식이 25유로이다. 요즈음 스페인 음식 물가로 보면 가성비가 괜찮다. 다른 선택이 없다. 식사의 질은 좋았고 만족스럽게 먹고 나왔다.



 식사 후 다시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듯 가로질러 기차역으로 돌아온다. 늦은 오후의 강한 햇빛과 서늘한 기온과 바람이 여행자의 마음을 무척 평화롭게 만든다. 엘 에스코리알은 큰 기대를 하고 찾은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에 잘 보고 즐기며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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