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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26.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29-1)

- 여행의 가치: 보는 것과 먹는 것 -

 오늘 아침 식사는 빕스(VIPS)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맛이 괜찮았다는 스페인 식 아침을 제공하는 카페 레스토랑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빕스를 보았고 충동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침 식사는 만족스럽다.



 식사 후에 내가 아내에게 ‘모래 마드리드를 떠나 코르도바로 가는데 이제는 식비를 조금 줄여야겠다’라고 무심코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당신 여행 중 사진 찍는 것이나 나 먹는 것이나’하고 바로 대꾸한다. ‘비행기 타고 멀리 와 비싼 숙박비 내고 자면서 밥값 아끼면 되겠냐’는 핀잔이다.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도 아니고 꼭 그렇게 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마디로 공격적인 대꾸이다.


 맞는 말이다. 밥값 아끼려면 여행 오지 말고 집 밥을 먹으면 될 일이다. 나도 여행 중 자고 먹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아내는 먹는 음식을 가지고 여행지를 기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식사 메뉴에 대해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 그런데 무심코 한 말 때문에 나는 갑자기 ‘지금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고 있는가’라는 개똥 철학이 떠오른다.


 나는 국내뿐만 아니러 해외생활 할 때도 평소에 여행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냥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집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아내의 칠순을 맞이해 내가 가이드 겸 통역의 역할을 한다는 의무와 봉사의 자부심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다. 내 스스로 여행 자체에 큰 호기심이 없으니 그렇다. 요즘 세상에 믿거나 말거나.


 다만 내가 젊어서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며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서 좋은 풍경과 빛이 있으면 순간의 풍경을 사진의 프레임 속에서 즐기는 것인데 아내는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사진은 보아야 찍는 것이다. 그래서 내 여행의 목적은 결국 무의식 속에서나마  ‘좋은 풍경과 색다른 문화를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아내의 여행목적 1순위는 당연하게 음식 먹는 것이다. 그녀는 젊어서부터 서양음식에 관심이 많고 잘 먹었다. 그리고 국내에 있을 때나 해외에서 살 때 모두 TV에서 요리 프로그램만 시청한다. 요리 프로그램의 경우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모든 언어를 다 알아듣는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요리도 잘한다. 그래서 나는 평생 집 밥을 잘 얻어 먹은 셈이다. 한식과 양식 모두를 포함한다. 그래서 여행 중 음식을 먹어보며 맛을 음미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특히 혀와 코로 음식의 재료를 알아내고 먹으며 확인한다.


 그래서 ‘ 사진 찍는 것이나 먹는 것이나’란 표현을 막힘없이 즉흥적으로 한 것이다.


 아내의 칠순 여행이니 여행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는 최대한으로 그녀를 잘 챙겨 먹여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아내의 여행 만족도는 먹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여행 중 잊지않도록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점심은 버거킹에서 세트메뉴를 시켜 먹었다. 이틀 뒤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으로 이동하려고 하니 가방 4개가 부담이 된다. 그래서 겨울 옷등을 담은 가방 큰것과 작은 것 2개를 미안하게도 지인에게 맡기고 돌아오는 중에 레알 마드리드 베르나베우(Bernabeu) 축구경기장 앞에 있는 버거킹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 매장은 2000년 내가 마드리드에 부임했을 때도 있었고 직장 동료들과 종종 왔던 곳이다. 그런데 아직도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버거 킹에서 점심을 하자고 한다. 이유를 물어 보니 어제 아란후에스 버거킹에서 먹었던 샐러드가 신선하고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나도 샐러드를 주문해 아내에게 주었다. 다 먹는다. 원래 샐러드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결국 아내가 밥값 절약하자고 버거 킹에 가자고 한 것이 아니다. 먹고자하는 목표 메뉴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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