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에 느낀 것들에 대한 뒤늦은 기록들
사진은 풍경보다 언제나 한 박자 느릴 수 밖에 없다. 카메라를 꺼내들 땐 그래서 다소 긴장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도 어쩔 수 없이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촬영은 달아나버릴 유일무이함에 쾅 하고 도장을 찍는 일인 것 같다. 파우스트에는 마침 이런 대사가 있다.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구나!" 파우트는 악마와 계약한 탓에 이 말을 함으로써 파멸했고, 동시에 구원받았다. 내 뜻대로 사진이 찍히지 않을 때는 놓쳐버린 순간 때문에 실망하다가도 실수로 포착해버린 또 다른 영원성에 구원받기도 하는 것인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또 이런 대사도 나온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이 대사야말로 계속 방황하는 것만이 사진가의 자질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불완전한 눈과 손 그리고 시간, 어떠한 영원성도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으며 그걸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라고.
아름다움의 균형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바다가 잔잔하게 찰랑여도, 고양이가 꾸벅꾸벅 낮잠을 자도,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여도 내가 포착한 아름다움은 결코 고정될 수 없어서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진이 잘찍고 못찍고를 떠나 대체불변하고 한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오키나와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데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페달을 밟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속력과 그의 속력이 달라 우리는 자꾸만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창 안팎의 풍경을 바꿔 나갔다. 우리 둘다 그 자리에 정차하고 있었다한들, 하나의 풍경만을 만들어내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 들어서 사진을 찍는 일이 가장 재미지다, 언제나 어디서나. 여행을 떠나면 무얼 보아도 난생 처음 보고 처음 느낀 것들뿐이라서 날 것을 기록하는 재미가 있다. 일상에서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너무 익숙한 탓에 전혀 새로울 수 없는 것들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순간에만 가치 있을 새로움이 빛난다.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는 건 카메라의 눈을 갖고 사는 것일테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인해 사진의 진가는 어쩌면 일상에서 두드러지는게 아닐까 싶기도.
포착하고 싶은 순간이 빛났었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100%만큼 온전히 담아냈다면 어떤 말도 필요치 않았을 거다. 자꾸만 여러장 찍고 말까지 덧붙이는 건 사진에 담지 못한 마음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사진 한장으로만 말하는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이렇게나 많이 덧붙였다.
오키나와, 17.01.17 이른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