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세상을 꿈꾸게 만든 뉴욕 여행일기 01
뉴욕여행을 떠나기 전 우연히 알게 된 정보에 나는 사소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뉴욕에서는 우유를 대체할 다른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 나처럼 유당불내증 때문에 우유 베이스 음료를 잘 고르지 못하는 사람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유당불내증은 일상을 꽤나 불편하게 만든다. 세상엔 맛있는 유제품 음료가 너무 많은데 마시면 속이 부대끼니 맘껏 마실 수가 없다. 예전에는 그냥 참고 먹었어도 회사를 다니면서부터는 아예 끊게 되었다. 오랜 시간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불편한 속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시고 싶지 않았다.
더 슬픈 건 만족스러운 대안이 없다는 거다. 우유를 끊고 나서 보니, 주변에 락토프리 우유를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서울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형 커피 체인점 중에서는 폴바셋, 엔젤리너스 정도이려나. 밀크티 전문 체인점조차도 락토프리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다. 작은 동네 카페에서 운이 좋으면 찾아볼 수 있지만, 회사 근처에서 찾아낸 카페는 어느새 폐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무려 한국인의 네 명 중 세 명이 유당불내증으로 고통 받는다는데..왜 이 사업 아이템 대박나지 않는 걸까.
뉴욕에서 막상 많은 카페를 가보진 못했지만, 짧은 경험만으로도 다양성이 충족되는 환경임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면 심심찮게 메뉴 하단에 Milk Alternative 라는 옵션을 찾아볼 수가 있었는데, 보통 70센트에서 1.5달러 사이의 추가 비용을 내면 주로 아몬드 밀크, 코코넛 밀크, 오트 밀크를 선택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식물성 우유로는 두유 정도는 제공되고 있지만 특유의 맛이 강하다 보니 잘 선택하지 않았는데, 내가 마셔본 아몬드 밀크는 훨씬 맛이 밋밋하고 담백해서 거부감이 덜 했다.
그러나 찐-한 우유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한번은 블루보틀에서 뉴올리언즈를 주문하며 우유를 바꿔달라고 말했는데, 직원이 이 음료의 경우 다른 우유로 제조하면 밋밋한 맛이 난다고 그닥 추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변경 없이 시켜봤더니 원래도 밋밋했다더라)
뉴욕을 비롯한 어떤 도시에서는 이런 일상이 당연할테니, 뭐 이런 걸로 감동받을 일인가 싶겠지만. 워낙 일상에서 누려보지 못한 행복이라 오히려 체감이 크게 되는 점이었다.
소수의 소비자를 위한 옵션을 사업자가 당연히 마련할 의무같은 것은 없겠으나, 소비자 입장에서 이번 여행에서 좀더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는 측면에서 내 돈을 더 내고도 한층 기분 좋은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취향이 존중받는 경험은 언제 어디서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유당불내증은 내가 마음대로 바꾸거나 개선해낼 수 없는 타고난 체질이기에 선택지가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특이체질까지도 고려해서 주문할 수 있게 한 점이 여행의 질을 높여주었다. 한 도시를 특별하게 해주는 이유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