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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미니 Jul 29. 2019

[뉴욕편] 오래 머물고 싶은 박물관

더 큰 세상을 꿈꾸게 만든 뉴욕 여행일기 05

박물관은 초등학생 때 현장체험학습 같은 행사로 서울에서만 몇번 가본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결코 유쾌하거나 엔터테이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치 학습의 연장선 같은 느낌. 어렸을 때부터 지루하고 재미없는 경험들만 축적되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는 굳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그것은 나의 제한된 경험으로 인한 편견일 수 있음을 알았다. 세상 어딘가엔 오래 머물고 싶은 박물관도 있었다. 관광 안내가이드 책자에서 보고 생각없이 들렀다가 의외로 빠져들어 발길을 붙잡히는 경험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체험요소나 전시기획의 방향성에 따라서 관람의 효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즉, 관람객이 딴짓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박물관도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는 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뉴욕은 과연 문화의 도시답게 독보적인 유명세의 박물관들이 많은 편이다. 여행 중에는 보통 한 군데 정도 가 보거나 때론 과감히 스킵하는 편인데, 뉴욕에서는 다른 도시보다 유독 어느 하나를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여유가 좀더 있었더라면 박물관을 구경하는 데에만 몇날을 할애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고르고 골라서 세 군데(모마, 자연사박물관, 메트로폴리탄)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1. MoMa

'모마'라고 귀여운 애칭을 가진 현대미술관. 뉴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친구도 가고 싶어한 곳이라 일찌감치 같이 방문했다. 디자인스토어에서 지갑을 털릴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하시오..

- 위치 : 11 West 53 Street, New York, NY 10019

- 운영시간 : 10:00 - 17:30 (금요일은 20:00까지) / 2019년 6월 16일–10월20일 기간 중에는 휴관, 10월 21일에 재오픈 예정

- 입장권 : 성인 $25, 학생 $14, 어르신 $18, 16세 이하 무료 / 티켓에는 특별전, 영화, MoMA PS1 입장료가 포함

- 홈페이지 : https://www.moma.org/ (한국어 안내)



오디오 가이드

가이드를 곧잘 빌리는 편이라서, MoMa에서도 입장 하자마자 대여소부터 찾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이 영어로 해설이 되어 있고, 한국어 해설은 일부 작품에 한해서만 지원된다. 그래도 주요 작품들은 웬만하면 거의 다 한국어 지원이 되기 때문에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해설도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나도 모르게 스친 생각은 '미술을 오디오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였다. 명도, 채도, 색상. 이것들을 보이지 않는 다른 감각으로 전달할 수 있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인 '기억의 지속' 해설을 한번 들어보았는데, 워낙 친숙한 작품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예상한 표현이 있었지만 의외의 표현이 더 많았다. 비장애인인 내게 또 다른 차원의 울림이 있을 만큼 표현이 풍부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당연하게도 유일한 방법이란 건 없다.


iPod에 케이스 씌운 듯한 모양. 괜히 MoMa 라서 그런지 더 깔끔해보이넹



GOOD DESIGN 展

전통미술이 아닌 색다른 걸 보고싶었지만 (현대미술관이니까)

한편으론 또 현대미술이라고 너무 심오하고 난해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다행히 3층에서 익숙하지만 새롭고, 실용적이면서 현대적인 GOOD DESIGN 展을 만났다.


헬리콥터에도, 빗자루에도 디자인이 숨쉬고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GOOD DESIGN을 체험할 수 있게 마련해둔 'Lab' 공간이었다.

디자인이 기능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평범한 일상용품이 예술 영역에서 가치있을 수가 있는지

직접 만져보고 체험하고 나니 멀찍이 구경만 할 때보단 훨씬 와닿았다.

그리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것들은 대체로...다 사고 싶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지갑을 주의하시오..2)


의자에 앉아도 보고, 커피 전용 계량컵도 만져보고. 저 컵은 나중에 구매까지 해버렸다.



후앙 미로 展

개인적으로.. 큰 감흥은 없는 전시였다. 에스파냐 출신의 입체파 예술가 후앙 미로의 작품을 처음 접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바르셀로나 공항에는 그의 이름을 딴 라운지가 있을만큼 유명한 분이라고.)


다만 경비원 한 분이 전시관 모퉁이에서 수첩에 스케치를 하고 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그저 길고 지루한 시간을 떼우고 있던 걸까. 체격에 비해서는 너무 작아보이던 그의 수첩이 내 눈에는 왠지 단단한 버팀목처럼 보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 / 아비뇽의 처녀들 (피카소)

대망의 5층 전시관. 거장들의 대표작은 모두 여기 걸려있다. 하나같이 너무 유명한 작품들이라서 오히려 무덤덤할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 감동이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아마도 고흐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영화 '러빙빈센트'를 보고난 후였기 때문일 거다. 그의 생애와 공명하는 작품이 주는 울림은 더욱 커졌다. 우울했던 그의 삶, 생에 대한 그의 의지가 눈 앞에서 아름답게 구불거리고 있었다. 오래도록 후대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가 이 그림을 그리며 진정 행복했길 바랐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다른 느낌으로 충격이었는데, 지금 봐도 굉장히 세련되고 힙하달까.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했어도 지나간 유물이라면 낡거나 촌스러울줄 알았는데, 피카소의 작품은 아직도 '현대'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며 살아 있었다. 그의 작품 앞에서는 경외심에 한동안 압도되어 있었다.


한적하게 오래오래 감상하고 싶었던 두 작품이지만, 역시나 유명세는 무섭다.





2. 미국 자연사 박물관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사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제일 주저하던 곳이, 바로 이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본투비 문과인 내가 가봐야 뭘 얼마나 이해하고 올 수 있을까, 자연과학은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으로나 가야하는 게 아닌가 등등의 생각에 끝까지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이과였던 대리님의 한마디가 내 등을 떠밀었던 것 같다. "거기 진짜 가볼만해~" (이과마저 비추했다면 정말 미련없이 안 갈 생각이었다.)


내심 반전을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대다수의 전시관을 무표정으로 관람했다. 그냥 해외서적 코너에 있는 영문 과학책 혹은 교과서를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봐도 가짜같은 가짜 모형이 생각보다 많았고, 인종 및 대륙별 전시관은 아시아인·아프리카 원시부족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범벅이라서 왠지 모르게 참 미국답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올 때쯤엔 꼭 와볼만 한 박물관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를 위주로 감상을 남겨본다.

- 위치 : Central Park West & 79th St, New York, NY 10024 미국 

- 운영시간 : 10:00 ~ 17:45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제외)

- 입장권 : 성인 기준으로 General Admission 입장권이 $23 (기본 관람만 가능)
/ General Admission+ONE은 $28 (기본 관람 + special exhibitions, giant-screen film, or Space Show 중 하나 추가 선택 가능)
/ General Admission+ALL은 $33 (모든 구역 관람 가능)

- 홈페이지 : https://www.amnh.org/

- 기타 : 오디오가이드 대여 없음


나름 귀여웠던 전시의 단면들

양치식물 가족 (왼) / 아프리카의 부족을 설명하기 위한 모빌 관계도 (우)

패밀리 패밀리 패밀리



공룡 전시관 (입구 & 4층)

지금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렸지만, 나는 이날 '다시는 공룡을 무시하지 마라'는 교훈을 얻었다. 진짜 이게..실제로 보면.. 너무 무서울 만큼 크다. 일단 규모에 한번 압도된 채로 전시관에 들어서니 모든 게 그저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멸종한 종을 이렇게나 많이 발굴한 것도 신기한데 이렇게나 잘 보존해서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더 신기하다. 이거 실화인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으로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모형이 아닌 '진짜' 화석이라는 점이 더이상 지구에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한껏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나는 단언컨대 태어나서 단 한번도 공룡을 이렇게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지구에 운석 충돌이 일어나지 않아서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지금 여기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란 말이 정말 틀린 말 아니다. 후덜덜.


상상 속에서 뼈대들에 살과 가죽을 입혀보니 ㄷㄷㄷ



지구관> 기후 변화 콘텐츠 (Climate Change content in Hall of Planet Earth)

간혹 어설프게 스티커 기념사진을 설치해두고 ‘체험존’이라고 해두는 박물관이 있는데, 그건 말그래도 기념이지 체험은 아니다. 체험은 관람객이 전시내용을 좀 더 능동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기후관에서는, 기후 관련 Yes/No 퀴즈를 풀어볼 수도 있고, 그래프를 통해 온도가 상승하는 추이를 직접 조작판을 움직여가며 볼 수 있다.  참고로 지구관은 1999년 개관하였으며, 2018년 7월경 리뉴얼을 통해 최신 자료와 체험 콘텐츠를 갖춘 지금의 전시관으로 재탄생하였다.


The new installation, which opens to the public on Saturday, July 7, is anchored by a dynamic media wall featuring large-scale imagery, animations, text and graphics, and interactive panels where visitors can engage with the evidence for climate change. (출처 :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Unveils Updated Climate Change Content in Hall of Planet Earth)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과학실



Space Show & Rose Center for Earth and Space

다음 볼거리를 찾아서 정처없이 걷다가 우주 상영관이 나왔다. 오 우주라니! 반가워하며 입장권을 내밀었는데 거절당했다. 내 티켓은 해당 쇼는 불포함인 일반 입장권이라서, 우주 상영관은 추가요금을 내고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입장권이 있어야 볼 수 있단다. 여행 막바지라 내 자금 사정을 두고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질렀는데, 꽤 충동적이긴 했지만 이날 가장 잘한 지출이었다.


상영관은 밖에서 보면 우주의 행성을 형상화한듯한 거대한 원형이고, 내부는 어두캄캄한 버전의 실내 돔 구장 같았다. 등받이를 뒤로 제끼면, 반구의 둥그런 천장에서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천장 전체가 꽉찬 스크린이었던 것이다! 영상은 또 어찌나 잘만들었는지. 실제로 우주여행을 떠난 것처럼 기분이 그럴 듯했다.


영상은 'Dark Universe'라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다룬 3D 다큐멘터리였다. 나에게 우주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지만 천문학 기초상식은 매우 턱없이 부족하다. 만일 이런 소재를 책으로 접했다면 이해는 커녕 집중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 뻔한데 30분 동안 알찬 나레이션과 형형색색 화려한 그래픽은 아주 효과 만점이었다.


총평: 꼭 하나의 전시관만 봐야 한다면 무조건 추천할 것. 이것만으로도 티켓값은 아깝지 않았다.  


상영관 출구 내려오는 길에는 행성 크기별 모형, 연대기별 빅뱅 설명이 있고 다 내려오면 또 다른 체험 존이 있다.





3.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The MET)

뉴욕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그리고 관람시간이 가장 턱없이 부족했던 대망의 메트로폴리탄.

- 위치 : 1000 Fifth Ave. (at 82nd St.)

- 운영시간 : 10:00 - 17:30 (금·토는 21:00까지)

- 입장권 : 성인 $25, 학생 $12, 시니어 $17, 12세 이하 무료

- 홈페이지 : http://www.metmuseum.org 

- 기타 : 오디오가이드 대여 있음


오디오 가이드는 당연히 빌렸고, 야심차게 오전 11시쯤 출발했으나 전시관이 도대체가...끝이 없다. 해설을 들으면서 전부 다 보려면 사흘도 벅차지 않을까 싶다. 전시관 넘버링만 해도 기본적으로 세자릿수인 여기에서는 지도를 보면서도 몇번이나 헤메고 길을 잃었다. (그래도 의지할 것은 결국 전시관 넘버 뿐이었지만.)

 



#131 ( The Temple of Dendur in The Sackler Wing)

이집트 전시관에서, 아니 어쩌면 THE MET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전시는 바로 이 덴두르 신전이다. 약탈해온 문화재면 어쩌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집트에서 감사의 의미로 기증한 것이라고 해서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봤다. 어느 위치에 서서 보는지에 따라 빛이 내리는 느낌이 달라져서 실내지만 실외같기도 했다. 벽면이 한쪽이 완전한 통창이라 개방감이 좋았다. 사실 이렇게 채광 좋고 초록빛 풍경이 내다보이는 공간이라면 안에 뭘 전시해놔도 이뻐보일 수 밖에 없겠다.


감상 포인트마다 채도, 색상이 미묘하게 다르다.



#700 (The American Wing & Wing Cafe)

이집트 전시관에서 이어지는 아메리칸 전시관을 지나고 나면 American Wing이 나온다.그전의 Sackler Wing 보다 좀더 탁 트인 공간이라 마치 거대한 온실에 온 것만 같다. 실내 공간에 빛이 많이 들어오니 역시 좋다.


American wing에는 온갖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을 보다가도, 자꾸만 작품이 잘 어우러진 공간 전체를 보게 되어서 잠깐 wing cafe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Wing Cafe

찐한 단맛으로 당 보충을 했더니 관람을 계속할 힘이 난다. Devil's cupcake 였었나, 이름은 금세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상당히 미국 정크푸드스러운 디저트를 먹었다.


가만 보니 미술관 내부 곳곳에 유난히 카페가 많았다. 지하 1층은 전체가 아예 식사를 위한 카페테리아였다. 워낙 오래 관람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실제로 너무 오래 관람을 하다보면 쉬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 찾아온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잠시 여유로워지곤 했다.




#680-684 (Musical Instruments)

The Art of Music 전시관에서는 내 최애 악기인 피아노가 너무 예뻐서 피아노만 잔뜩 사진으로 남겼지만, 다른 여러 악기들도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밌게도, 바로 근처에는 ROCK&ROLL이라는 현대 악기 테마관이 별도로 있었다. Play it loud라는 표제에 걸맞게 여기선 기타리스트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비디오 아트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피아노, 다른 느낌.



#205-250 (Asian Art)

참 마음이 복잡해졌던 아시아 예술관. 외국에 나와서 한국의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잠재된 애국심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것이 그리 대단한 애국심은 아닐지라도 세계 무대에서 나와 같은 꼬리표를 단 무언가가 잘 나가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고, 그렇지 못할 땐 아쉬운 것 아닌가. 그런데 상대가 일본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무조건 그 경기는 이겨야 하고 패배가 주는 쓰라림은 곱절로 커진다.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지만, 일본이 아시아 예술관을 멋드러지게 차지하고 있는 걸 보니 새삼 문화외교력 차이를 절감했다. 각 나라의 문화 유산을 제3자에게 present하는 방식의 차이가 낯선 땅에 선 이방인의 눈으로 봐도 확연했다. 흔한 의자마저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걸 보고 느꼈다. 일본 전시관 내 모든 의자에는 자국 문화의 상징인 다다미를 깔아놨다. 전통 정원은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온 세트장처럼 꾸며 놔 현실감을 더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규모부터 작을 뿐더러, 무채색의 공간에 여러 전시품을 진열해둔 것이 전부였다.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이곳을 둘러볼 관람객에게도무채색의 인상만 남을 것이 뻔했다. 한바퀴를 성큼성큼 걸으면 30초 안에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만큼 작았는데도 그 아쉬움에 발걸음이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일본스러움이 뿜뿜하는 일본관 내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러 전시관들..

시간이 갈수록 체력적·일정상 한계로 인해 관람이 다소 원활하지 못했다. 몸은 지쳤는데 마음만 조급했다. 미로 속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는 듯이 번호판을 보고 움직이기에 급급했다.


불현듯 스스로 여유가 없어진 것을 느끼고 잠시 멈춰섰다. 생각해보니 카페에서 쉰 이후로는 단 한번도 의자에 앉은 적이 없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 마음이 가는 작품 하나 없었을 리가 없는데, 그 앞에서 좀더 많은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더 많은 작품을 보지 못한 것보다 여유를 제때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웠다.


문득 박물관에서는 관람자의 태도도 일종의 체험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꼭 무언가를 보거나 배우거나 기억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내가 눈앞에서 잠 자던 작품을 깨워서 숨쉬게 하고 그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


결국 이날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던 전시관까지만 마무리를 한 후 다음 일정을 위해 박물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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