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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미니 Jul 07. 2019

[뉴욕편] I like jazz in New York

더 큰 세상을 꿈꾸게 만든 뉴욕 여행일기 04

재즈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늘 "좋아해요"라고 답은 하지만, 이내 이런 말을 덧붙인다. 

"잘 모르지만요". 


문득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일 뿐인데 왜 변명투로 말하게 되는 걸까. 매니아층이 두터운 장르다보니 내가 아는 것이 부족할 거라 짐작하는 탓도 있고, 장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상식을 알아야만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강박도 없지 않다. 사실 재즈든 아니든, 내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 앞에서 아는 체 하는 것 같아 좋아하는 마음까지 숨겨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여행은 어떠한 이유나 수식도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계기(혹은 일시적 용기)가 된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 마셔보고 싶은데 추천해달라"고 주문해본다거나.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옷을 과감히 입어보거나. 기회는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 뿐이라는 여행자의 모토가 낯선 땅에서의 행동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리고 순수한 그 마음을 계속해서 따라가다 보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뉴욕에서는 재즈가 그러했다.


Mezzrow Jazz Club


재즈의 본고장에 왔으니 당연히 재즈클럽에 가야했다. 대체로 그리니치 빌리지에 유명한 곳들이 몰려있어서, 우리도 그리니치에 위치한 Mezzrow와 Smalls로 갔다. 두 재즈바는 연계되어 있는지 하나의 입장권만 있으면 서로 오갈 수가 있었다. 하루에 보통 2-3회차 정도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가까운 공연장인 경우 시간대만 잘 맞춘다면 충분히 둘 다 볼 수 있다. 첫 타임 공연은 Mezzrow에서, 이후 Smalls로 이동해서 다음 타임 공연을 보기로 했다.


메즈로우 재즈 클럽 (Mezzrow Jazz Club) 


그렇게 해서, 우리의 첫번째 재즈클럽이었던 메즈로우.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취향 저격 노래를 만났다. 시작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있었는데, 다시 집어들어 급히 가사를 메모했다. 가사가 참 예뻤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사가.


When a girl meets boy
Life can be a joy
But the note they end on
Will depend on little pleasures they will share
So let us compare
I like New York in June, how about you?
I like a Gershwin tune, how about you?
I love a fireside when a storm is due
I like potato chips, moonlight and motor trips
How about you?


나중에 찾아보니 ‘How about you?'라는 제목의 곡이었다. 재즈곡은 어디선가 좀 들어본 유명곡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여러 버전이 있던데, 이 노래도 꽤 많은 가수들이 불렀던 걸 보아선 알려진 곡이었나 보다. 원곡은 주디 갈런드 버전이고, 1941년도 영화 'Babes on Broadway'에 삽입된 ost였다. 그 이후에 보비 대린, 해리 닐슨, 프랑크 시나트라의 버전으로도 불렸다.   


다음 곡도 너무 좋아서 그때부턴 기록용으로 아예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특히 그날 재즈바에는 어느 노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 단체 손님이 있었는데, 즉석에서 Happy birthday를 재즈풍으로 불러주며 그에게 깜짝 축하를 해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 프랭크 시나트라 원곡의 'All The Things You Are'도 너무 좋았고. 

불러주는 노래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


All the things you are
Happy Birthday :)



스몰스 (Smalls) 183 W 10th St, New York, NY 10014 미국


스몰스는 이름대로 규모가 아주 작은 재즈클럽이었다. 너무 작아서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정도였다. 관객들이 다같이 무대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달까. 나와 동행은 심지어 1열이라서 그 무대에 같이 연주자로 선 것 같았다.


'무경계'의 위력은 상당히 컸다. (효과는 굉장했다!) 공연 시작부터 압도되어 숨도 못쉬고 약 1시간 가량을 넋 놓고 있었다. 내 눈 바로 앞에서 연주자들이 각자의 파트를 쟁취하기 위해 격한 싸움을 벌였다. 급기야 색소폰 연주자는 자기 파트 중간에 안경이 비뚤어져 걸리적거리자 바닥에 벗어던진채 연주를 마칠 정도였다. 


네 명의 연주자들은 그처럼 강한 개성을 뽐내면서도 묘한 균형감을 이루고 있었다. 스몰스에서 경험한 재즈는 치열하고 뜨거웠다. 고치고 또 다듬어서 잘 보이고 싶은 결과물이 아니라 이 순간순간에 그저 최선을 다 하여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재즈.

세련되고 짜릿한 재즈. 

치열하고 열정적인 재즈.


뉴욕에서 만난 재즈는 어렵거나 낯설지 않았다. 차갑건 뜨겁건, 어느 모습을 하고 있건 간에 내 마음을 쉽게 내어주고 싶어지는 음악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공연을 보고싶고,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재즈에 대한 지식이 여전히 보잘 것 없을지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좋아하면 안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그런 이유는 없기 마련이다) 그냥 좋아해도 괜찮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알아갈 수 있는 것들이 정말 정말 많으니까.


I like jazz in New York.

How ab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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