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살이 되던해에 저는 전역했습니다. 군대를 그리 빨리간것도아니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그냥 주변 친구들 갈때 같이 갔고 나올때 같이 나왔습니다.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대. 아직도 그 부대 진입로너머에 보이는 위병소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만, 그렇다고 다시 가고 싶지는 않네요. 다만 회색 하나로만 칠해진것같은 그 시간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던 시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으니, 가끔씩 그때 느꼈던 어떤 감정들이 그리울때가 있습니다.
전역증을 받아들고 위병소를 걸어나오는데, 위병소 근무자 아저씨들이 그간 고생했습니다 잘가세요 라는 말이 왜 그리 먹먹하던지. 전역자들은 아마 다들 비슷할겁니다.
서울역으로 향하기전 거쳐야 할 곳이 동두천중앙역이었습니다. 당시엔 택시나 버스를 타고 부대를 빠져나와서, 동두천 중앙역까지 도착후 그곳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휴가를 나올땐 그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아까워 발을 동동굴렀었는데, 전역날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버스 안 풍경이 더 좋더군요. 논 밭 뒤로 산들이 제식병처럼 도열해 있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습니다. 내가 군생활 한곳에서 조금만 걸어나오면 볼 수 있는 이 풍경. 부대안에서 보는것과는 분명 또 다르더군요. 적막하고 삭막한 부대막사 바로 근처에 이런 시골풍경이 함께였던겁니다.
그간 여러번 버스나 택시를 타고 나오면서도 못봤던 그 주변 풍광이 전역 날 처음 눈에 들어왔으니, 사람의 시야라는 건 시간과도 결속되어 있지않나. 그런 감상이 지나갑니다.
그날 같이 전역한 같은 군번아저씨가 저포함 3명이었습니다. 타중대에 병과가 달라 교류가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얼굴이나 가끔 마주쳤던 그런친구들이었죠.
버스 안에서도 각자 별다른 말이 없었던걸 보면 다들 저와 비슷한 감상에 빠져있지않았나. 짐작할뿐입니다.
동두천역에 도착하고나면 이 아저씨들도 고향으로 돌아갈테고, 그 뒤로 다시 볼일이 없겠구나. 석별의 정이란게 존재하지 않을 사이임에도 당시에는 2년을 보낸 같은 군번친구들이라는 생각에 밀려드는 감정이 새삼스럽더군요.
근데 이런 감정은 저뿐만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동두천역에 도착한 아저씨 중 하나가 담배들 피시냐고 물었거든요. 저는 안핀다고했더니, 그 아저씨는 나도 이참에 끊어야겠네요라며 담뱃대를 꺾었습니다. 담배를 무는 대신 그 아저씨가 어느곳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그곳에는 옥수수를 쪄서파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옥수수나 하나씩 먹고 가죠'
별 말없이 전역병 셋이 다가와서 옥수수를 사는 모습이 주인할머니 입장에선 좀 생소하셨었던것 같습니다. 제대하는 날이면 술이나 진탕먹고 코가 삐뚫어져서 집으로 가던게 당신이 기억하는 전역병들의 모습이라고 하시더군요.
옥수수가 맛있다는 말에 할머니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을때다. 얼마나 좋겠누.
그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정말로 너무나 진심이 담겨있는 표정이라 오히려 듣는 저희가 머쓱했던 기억이 나네요. 남자들에게 전역날의 소회라는것은 단순 요약이 힘든 복잡다단한 일이겠지만..
저에겐 그날의 말과 할머니의 표정이 가장 깊게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한 십년쯤 지난 어느날. 퇴근하고 귤자판을 깔고 계신 어르신에게 귤을 한봉지 샀습니다. 저보고 싸게줄테니까 다 가져가라고 하시더군요. 먹어보고 맛없으면 돈 안받겠다구요. 하나 먹었더니 맛이 괜찮더군요. 그래서 다 가져가는건 저도 무리고 3천원어치만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저녁은 노을빛이 한강근처를 물들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어르신은 제 뒤로 물들고있던 노을을 바라보고 계시더군요. 제가 슬쩍 뒤를 돌아봤더니, 세월이 빠르다란 말이 들려왔습니다. 그 말씀할때의 표정이 뭐랄까.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후회로 점철된 회한이 아니라, 그저 그 좋았던 시절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요. 그것도 회한이라면 회한이겠지만 저보고 '너무 좋을때'라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전역날 뵈었던 옥수수할머니의 표정이 겹쳐지더군요.
그 잠깐동안 제가 시간이라도 거슬렀던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분명 다른사람이지만 참 그때가 좋을때다라는 말을 하는 두분의 표정은 분명 하나였거든요.
그리고 어제 저녁. 러닝을 좀 하고 물 마시는곳에서 쉬는데 산책하는 아주머니의 말씀.
참 좋다. 젊은 사람들 뛰는게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그때가 제일좋을때야. 화양연화라고 알아요? 난 걷기는 해도 뛰진못해. 너무 좋을때다. 부러워. 부러워 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액자식연출이라고 하나요? 숨을 헐떡대면서 앉아있는데 저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다시한번 퇴근길의 귤자판대로, 또 다시 한번 전역날 옥수수할머니의 눈앞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하나같던 표정과 분위기. 참 좋을때라는 몇단어가 공명하듯 울려대는 착각.
제가 고개를 들었을땐 이미 그 아주머니는 저만치 멀어져계셨습니다.
저는 아직 나이가 마흔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만, 멀리있는 나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가끔씩 그때가 참 좋을때다라는 말이 사실 멀리서 웅웅대는 파리날개 소리처럼 와닿지 않을때가 많았는데요.
요즘은 저렇게 말씀하는 분들의 심정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을 그리워할 미래의 나는 그때까지 저를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시간은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저를 그 시점으로 데려다놓을것이니 흐르는것에 대한 걱정은 좀 가볍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