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장학사의 좌충우돌기
"선생님은 입이 옆구리에 있나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물었다. 선천적으로 목이 약한 나는 말을 조금만 많이 하거나 크게 하면 바로 목이 쉰다. 그래서 학기 초가 되면 후두염이나 편도선염을 앓기가 일상이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손짓과 표정을 동원해서 수업을 하는 날도 있었다. 일상적인 수업의 루틴 속에서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는 똑똑한 아이가 번역을 도맡아 해 주기도 하고, 어쩔 때는 칠판에 쓰거나 파워포인트로 수업을 대신하는 날들도 있었다. 교사가 되기에 가장 부적절한 목 상태를 가졌던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차고 수업을 했다. 크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마이크의 음량을 조절하면 기계음이지만 아이들이 내 목소리를 못 듣지는 않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늘 마이크를 차고 수업을 들어갔는데 사실 선생님들 중에는 마이크 없이 수업을 잘하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지니신 분도 많다. 복도를 걸을 때 그분의 목소리가 울려서 옆 반까지 들릴 때면 부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참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마이크 없이는 살 수 없다. 자꾸 사용하다 보니 이제 목소리가 더 작아져서 가까운 아이에게 말할 때도 마이크를 사용해서 말을 했다. 마이크를 늘 차고 다니는 내게 아이들이 입이 옆구리에 있고, 목소리가 옆구리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웃었다. 마이크는 그 아이들 말대로 나와 거의 한 몸이었다. 마이크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는 친구들에게도 효용 가치가 있어서 옆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자니?"하고 물으면 마이크에서 울려 나오는 속삭임에 놀란 아이가 자다 깨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15년 이상을 마이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나는 마이크에 울렁증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 앞에서만 교사로 똑똑한 채 하며 살았지 세상 밖으로 나오니 모르는 거 천지였고 어설픔의 극치였다.
계획에도 없이, 장학사로 발령 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상관을 모시고 출장을 갔다. 옆에 서 있다 그냥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의 상관께서 전부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앞에 나가서 서게 되었고, 순서가 되어 마이크가 내 앞으로 왔다.
"안녕하세요 새내기 장학사입니다."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으아~~ 지금 왜 이러지?' 속마음으로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뭐라고 말한 줄도 모르게 마이크는 옆으로 건너갔다. '아~~ 떨려' 나는 마이크 울렁증이 있었던 거다. 아이들 앞에서만 마법처럼 마이크 울렁증이 사라지는 거였다. 그걸 지금까지는 왜 몰랐을까? 아니 생각해 보면 알았던 것도 같다.
연구부장으로 지내는 동안 본 교무실에서 방송을 종종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시험 문제에 대한 안내가 필요할 때마다, 뭔가 방송할 일이 있으면 나는 대부분 교무실무사 샘에게 부탁하거나 교무부장 샘에게 부탁하는 등 최대한 마이크를 가까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마이크를 잡을 일이 있을 때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없다. 업무담당자가 마이크를 잡고 사회도 보고, 안내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한다. 이거 참 큰일이다. 내성적이면서 활발하고 활발한 듯하면서 소심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 안 쓰는 것 같으면서도 엄청 신경 쓰고, 상처 받지 않은 듯하면서 상처 받으며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나를 내가 알기에 그런 나를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마이크를 잡을 수 있을까? 똑똑하지 않고 좀 버벅거려도 마이크 하나에 나의 진심을 담아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갑자기 생각한다. 마이크를 잡을 일이 얼마나 많다고 그걸 또 걱정하고 근심하는 건가? 참 할 일도 되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