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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너구리 Feb 19. 2022

장학사로 일 년 살기

장학사로 일 년 살기


  시간은 쏜 화살이라고 했던가? 벌써라고 말하기엔 긴 시간이었고 이제서야라고 말하기엔 그 단어가 내가 느끼는 또는 느낀 감정들을 대변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일 년이라고 쓴다. 일 년 동안 나는 살아왔고 살아 있다. 누가 보면 뭔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삶이 가장 크고 소중하고 무겁다.

  그동안 나는 직장 근처 5분 거리에 원룸을 구했다. 어느 저녁  늦은 퇴근길에 졸며 운전을 하다가 이러다가 한방에 훅 갈 수도 있겠다 싶어  직장 근처에 원룸을 구했다. 나의 퇴근 시간을 4시 반으로 정확히 인지하고 매일 4시 10분에 전화를 걸던 엄마는 이제 퇴근  후에 딸이 집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깨닫게 되었고, 포기하게 되었으며, 받아들이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6시에 전화를 하는 센스까지 가지게 되었다.

교육전문직이 교육행정직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행정이란 낯선  용어가 점점 내 삶 속에 자리를 넓혀가는 느낌이다. 마치 그건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를 통해 오미크론이 되어 확산세가 점점 빨라지지만 중증화율이나 치명도가 점점 낮아지는 것과 같이 내 삶을 조금씩 조끔씩 바꾸고 있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점점 사그라들어가고  의자에 앉아서 기본계획을 만들고, 사업을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강사를 섭외하고, 장소를 대관하고 , 교육부와 자주 화상회의를 하며 좋은 의견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다. 의회 일정을 달력에 기록하고 학습휴가를 언제 쓸까 생각하다 남아있는 장기재직 휴가를 생각하며 아득해한다.

점심시간이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내  하루의 유일한 휴식인 듯 햇빛 아래를 막 쏘다니다 그래도 차는 한 잔 마셔야 하루가 행복하다는 옆 사람을 고려해 커피를 나눠 마신다. 이런 일상을 일 년 가까이 살아온 나에게 그동안의 생활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머뭇거리다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일부-

이 시에서와 같이 나는 나를 미워했다. 생각 없이 삶의 전환을 맞이한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미워할 수가 없어서 조금은 가엾어 눈물 흘렸다. 가엾어하다가도 또 미워했다. 괜찮다고 잘해보자고 다독이다가도 또 미워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났다. 한동안은 내가 기획한 사업이 학교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설레기도 했었다. 그즈음 내게 전화를 걸어온 대학 동기이며 유일하게 전문직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가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보다 일 년 먼저 전문직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긴 시간까지도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게 의아하기도 했다. 나는 부서를 바꿔 보라고, 그럼 성취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어쭙잖게 그를 위로하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삶이 그런 걸까? 인생이 두더지 게임 같이 느껴진다. 한 마리의 두더지 머리를 때리면 '왜 때려'하면서 또 다른 두더지가 불쑥 튀어나오는 끊임없는 두더지 게임. 두더지 게임은 신나기라도 했는데, 나는 신나지도 않다. 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다시 던진다. 역시나 윤동주 시의 한 구절을 응용해서다.

'만 열두 달을 나는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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