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직까지는 내 인생의 최고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왕의 남자. 이 영화의 분위기는 압도적이고 매력적이어서 한 번 보면 홀린다는 말이 딱 무슨 의민지 알 것이다. 모든 장면 장면이 예술이고 작품이고 아름답다는 말을 형상화한 것 같다. 색은 아름답고 향이 나지도 않는데 향기가 나는 것 같고 귀는 간지럽다. 어쩜 이렇게 음악도, 색감도, 배우들의 대사도, 몸짓도, 연출도 완벽할까? 모든 요소가 매혹적이다.
만화를 그릴 때 1mm의 선 굵기로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그 선 하나가 달라졌으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아름답고 묘하다. 아마 1mm의 작은 변화만 주었어도 이런 느낌은 안 났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섬세하고 여린 영화다. 생각해보면 섬세함은 어쩌면 아름다움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 섬세함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니까...이준기가 조금 더 여자처럼 예뻤다면.? 이런 분위기가 안 나왔을 것 같다. 신라의 화랑이 존재했으면 저렇게 생겼겠거니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무조건 뛰어나게 예쁘고 그런 것보다 전체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지며 조화로울 때 멋진 작품이 탄생하는 것 같다. 그런 전체적인 섬세함들이 모여 이 영화는 하나의 멋진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때는 인물의 감정선을 그저 단순하게 이성적인 감정으로 좋아하나 안 좋아하나에 초점을 뒀었던 것 같다. 저 인물은 저 인물을 결국 좋아하는 건가? 좋아하지 않는 건가? 이런 단순한 질문과 그만큼 깔끔한 답을 찾으려 했다. 이 인물이 저런 행동을 했으니 좋아하는 것이고 저런 행동을 했으니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와 같은 답변 말이다. 사실 모든 드라마, 영화를 볼 때 그런 해석을 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단순한 감정은 없다는 사실과 모든 감정에는 항상 확실하지 않아 애매하고 미묘하고 정의 내리기 힘든 다중적인 요소가 함께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작품에서 인간관계를 그렇게 묘사하겠지만 이 영화는 유독 그런 요소를 잘 보여준 영화이다. 아무래도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닌 탓이다.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하고 다중적인 감정을 이 영화는 더욱 극단적이고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래서 말한다. 인간의 감정은 절대 확실하게 규정될 수 없다고.
사랑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의 감정도 여러 가지이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 과연 이성적인 것을 뜻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