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유치한 면이 있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느낌이 좋다. 여전히 그걸 보면 그 어린 시절의 내가 다시 된 것 같다.
특히나 나는 <짱구는 못 말려>의 극장판을 좋아하는데 그건 그냥 티브이에서 방영해 줄 때 보는 단편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가끔 찾아보기도 한다.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은 어른용 영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른이 봐도, 아니-어른이 보면 더 감동적으로 와닿는 많은 의미가 있는 깊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유명하다. 나 역시도 어른이 되어서 그 진가를 더 알게 되었다.
<짱구는 못 말려>의 극장판은 어른이 되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집합체이다. 그래서 여느 명작 영화들만큼 많은 깨달음과 감동을 주고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애니라고는 하지만 명작영화의 탈을 쓰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다.
줄거리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폭풍을 부르는 석양의 떡잎마을 방범대>는 짱구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우연히 낡은 극장에 갔다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 속 세상은 서부시대 배경에 시간이 멈춰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른 채 매일 저스티스 시장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노동에 동원된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짱구와 같이 떡잎마을의 낡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다가 영화 속으로 들어오게 된 떡잎마을 주민들로 처음에는 다시 원래 있던 떡잎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영화에서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함에 따라 좌절하고 매일같이 동원되는 노동과 일상에 젖어 들어 기억을 점차 잃어가고 결국 현생에서의 자신을 잊어간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 심지어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도 모두 잊으면서 영화 속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살아간다.
짱구는 기억을 간직하려 애를 쓰고 결국 방법을 찾아내 그 영화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것은 영화가 끝나야 영화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영화를 끝내기 위해 시장과 맞서 싸우고 결국은 영화를 끝낸다.
현실과 꿈
정말 신기하게도 이번에 보게 된 극장판은 처음 본 편이었는데 평소 많이 생각하던 주제에 관한 것이라 마음에 더 와닿았다.
이 영화는 시간이 멈춰 있는 영화 속에서의 삶을 이용해 인간의 진짜 삶, 즉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의 반복되는 하루하루, 그 삶을 살아가면서 잃어가는 진짜 자신, 그리고 꿈을 현생에서의 삶을 잊어가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이유도 없이 매일 목적 없는 행동만 반복하고 있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비유했다.
우리는 항상 반복되는 삶을 살며, 꿈과 자신의 목표와 동떨어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도 그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결국 거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꿈과 원래의 목표와는 멀어져 간다.
자신의 꿈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런 꿈과 소중한 가치들을 잃고 순응하게 되는 이유는 현실'만'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가치 즉, 명확하고 실존하는 가치만을 좇는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영화 속의 들어간 사람들은 거부하거나 반항하면 채찍을 맞게 되기에 열심히 노동에 참여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맞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당장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꿈이라는 것도 현실이라는 울타리에 막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 꿈은 자신의 낡은 상자 속에 갇혀 봉인되어 버린다. 현실에서 눈앞에 보이는 가치는 그 낡은 상자 속에 있는 가치보다 더 커 보이고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 상자 속의 것들은 점점 잊히고 나중엔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결국 '한낱 꿈'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되고 어린 시절의 어리던 마음으로 치부된다.
그렇게 현재는 보이지 않고 와닿지도 않아 좋아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그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해, 어린 시절의 꿈이었을 뿐이야 하면서 먹고살기 급급하다는 이유로
미뤄두지 않고 키웠다면 더 큰 가치가 되었을 소중한 씨앗들은 결국 한낱 추억으로 치부되며 낡은 상자 속에 갇혀 빛바래버린다.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자꾸만 미룬 채 현실에 절여진 듯한 삶은 진짜 목적을 망각하기 쉬워진다.
떡잎마을로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자신이 떡잎마을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잊고 심지어는 떡잎마을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진짜 삶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자신이 누군지,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잊지 않은 사람들은 기억을 잃지 않지만 좌절하고 영화 속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기억을 점점 잃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소중한 가치들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희미해진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실제 삶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목표와 꿈은 무엇인지 반복해서 상기시키려는 노력을 해야만 그 소중한 가치들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무기력함과 지루함은 익숙함에서 오는 무조건적인 감정일까?
영화 속에서 모든 이들이 채찍 맞는 것이 두려워 반강제적으로 노동에 동원될 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한 사람은 그곳에 살고 있는 박사였는데 매일같이 끌려다니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금지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 박사는 정말 오랜 시간 매일 고문을 당하지만 그 어떤 사람들도 그 박사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할뿐더러 그렇게까지 고문을 당하면서 계속 연구를 지속한다는 것마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짱구는 짱구답게 어느 날 고문당해 누워있는 박사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박사는 끌어 오르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답변과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며칠 뒤, 짱구가 박사에게 다가간 모습에 용기를 얻은 한 소녀는 고문당한 박사를 부축하며 박사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런 질문에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한심해 보이지, 나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만 연구는 나에게 본능 같은 거라서 그만둘 수가 없어.
박사가 본인조차도 왜 하는지 알지 못하는 연구를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계속 지속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은 아마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 영화 속의 영화 속 사람들 모두 궁금했을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후에 연구의 목적을 기억해 낸 박사는 자신의 연구 목적은 후에 영화에서 자신들을 꺼내 줄 영웅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본능. 이 단어는 사실 이 영화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자발적 행동이고, 꼭 해야 하는 자연스럽고 선천적인 행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박사에게 있어 본능이란, 이유는 모르지만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큰 울림이었을 것이고 이 울림은 자신의 연구를 열정적으로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박사와 영화 속 사람들은 시간이 멈춘 곳에서 같은 것을 매일 반복한다는 면에서는 같았지만 그 근본은 달랐다.
박사의 행동은 자발적인 목적과 열정이 뿌리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목적의 의문과 비자발성이 뿌리를 이루었다.
그들은 비슷한 양상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었고 그것은 영화 속 사람들이 탈출하는 데 있어 아주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박사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같은 것을 매일 반복한다는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은 결국 습관 때문이었다.
그곳에서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현실을 잊어가는 그들의 행동을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수단은 반복되는 행동에 따른 익숙함. 즉 습관이었다.
현실로 돌아갈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 현실에 점점 순응하는 마음으로 강제 노동에 임한 사람들은 나중엔 이유도 모른 채 습관과 익숙함으로 일을 할 뿐이었지만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에 품은 일부 사람과 박사는 기억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억을 잊어감에도 계속해서 나가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들을 하게 된다.
박사를 포함한 시간이 멈춘 영화 속에서의 사람들은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익숙해져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해가 움직이자 비로소 현실의 삶과 자신들의 목적을 기억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의 기억과 희망은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지만 반복되는 습관과 익숙함으로 인해 가려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모든 것은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결국에는 습관이 된다. 그리고 습관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습관이 무슨 목적과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마음가짐으로 시작된 행동인지 잊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처음에 사소한 마음으로 시작된 행동들은 결국엔 엄청난 방향성의 차이를 보인다.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것은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과 목적은 그 행동이 지속되는 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마음가짐과 목적을 뿌리 삼아 하나의 나무가 자라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마음가짐은 행동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무의식적으로 기억된다.
그렇기에 행동을 하는 동안 느끼는 마음은 사실 그 습관이 시작된 목적과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박사의 희망에서 온 뿌리는 행동의 뜨거운 열정과 자연스러움을 동반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영화 속에서의 당장의 현실에 맞바꾼 순응과 좌절에서 온 뿌리는 어떤 열정이나 의미도 없이 기계적으로 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세상 속에서 그 뿌리가 습관이 되어 만든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박사의 무의식적인 연구는 결국 영화를 끝내는 데 도움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의 그때 그 상황에 맞춘 순응적인 태도는 저스티스 시장이 만들어놓은 틀속에 갇혀 영화를 끝내지 못하는 방해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반복하는 특정 일들이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에 질리고 무기력해진다고들 한다. 이를 타성에 젖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보통 매일 반복되고 똑같은 일을 할 때 많이 쓴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것은 반복되는 행동을 할 때 생기는 무조건적인 감정일까?
박사와 사람들의 다른 점은 박사는 처음목적을그대로 실천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처음의 목적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목적이란 존재는 결국 박사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열정의 농도를 다르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렇게 오랜 날을 끌려다녔음에도 박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본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여전히 그 습관의 목적을 무의식 중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모든 익숙함이 타성에 젖게 만들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무기력은 목적이 희미해져 잊고 있을 뿐, 자신의 삶이 자신의 진짜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임이 아닐까?
자신의 꿈과 목표로 나아가는 동안 그것을 잊지 않고 지키며 계속해서 행동하되 목적을 상기시키며 방향성을 점검하는 일이 꿈과 목표를 잃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꿈과 희망에 대해 되뇌어보는 큰 의미가 되었다. 꿈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있어도 그것을 기억하는 일이 더 어려운 일임을 한 해 한 해 느끼기 때문에 알고만 있음을 경계하고 항상 마음에 지니고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