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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Nov 20. 2023

평범한 문과 출신이 AI에 주목하는 이유

이제는 AI와 협업하는 시대

직장인 6년 차쯤 되니 모든 사람이 '직무'형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MBTI가 유행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내가 생각하는(그리고 통상적으로 그려지는) 직BTI에 과몰입했다. 가령 개발자라면 보통 야행성이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을수록 실력자라는 편향적인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나를 어떤 형태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비개발 직군에서 다양한 직무로 이직을 하느라 정통파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페르소나에 맞게 내가 해야 할 일과 아닌 일들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AI의 발전, 정확히 말하면 ChatGPT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내 직무를 초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직BTI에 과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우수한 사람'의 기준을 잡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기획자가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거지.

마케터가 이 정도 퍼포먼스는 내줘야지.

개발자라면 이런 정도는 고려해 줘야지.

각자의 일을 어느 정도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남은 일은 협업이었다. 인사, 조직문화라는 미묘하고 어려운 과제도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을 지속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상적인 조직이 되려면 우리 팀에 맞는 프레임을 짜야했다. 각자 자질은 좋은데 성과가 잘 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무형 인간들을 가지고 하나의 팀을 조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비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아서도 아니다. 사람의 동기와 성향은 너무 다양하고, 나조차도 숭고한 미션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기에 일주일에 한 번하는 전체 회의 따위를 가지고 문화를 바꾸기는 어려웠고, KPI를 잡아도 결국 나 혼자 이 숫자를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아 답답했다.


빠른 시도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어쨌거나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라고 여러 직무를 뽑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채용을 해놓고 나면, 다들 어찌나 바쁜지 각자 일 쳐내기에 바쁘다. 나는 '새로운 시도'라는 아이템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 결국 사장되는 것을 지켜보며 차라리 '내가 배워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크고 작은 툴들을 배워가며 형편없는 결과물들이나마 만들어내곤 했다.


GPT가 만들어준 Apps Svript 코드 : 아직도 코드를 읽을 줄 모르지만 상관없다.


그런데 ChatGPT가 나온 뒤로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인 개발까지 어설프게나마 구현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맛봤다. 뉴스레터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자동화 툴을 구축하면서는 GPT가 만들어 준 Apps Script 코드를 사용했고, IR 자료를 만들면서는 복잡한 SQL 쿼리를 주문해 썼다. 최근에 새로 나온 기능인 ChatGPT의 챗봇 기능을 통해 회사의 DB를 가지고 챗봇을 만들기도 했다.


피그마 플러그인 Wireframe Designer


달리가 달린 GPT는 이제 디자인도 해준다. SNS 콘텐츠 기획을 알려주면 초안을 몇 개 짜준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레퍼런스 삼아 소재를 제작한다. 최근 피그마에서 새로 써본 'Wireframe Designer' 플러그인은 GPT와 연동되어 문장으로 원하는 와이어프레임을 주문하면 완성도 높은 모바일 와프를 그려준다.


개인 계정에는 커스텀 인스트럭션을 통해 나만의 영작문 챗봇을 구현해 두었다. 내가 영작을 하면 문법을 교정해 주고, 교정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내 대화에 답까지 해주는 형식이다.


누군가를 설득할 리소스를 전혀 들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것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GPT 3.5 때는 이렇게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터보 4가 장착된 지금의 GPT는 똑똑한 대학생을 넘어 똑똑한 인턴의 단계까지 왔다. GPT의 무서운 발전 속도로 미루어 볼 때, 나는 직무에 기반한 수행 능력을 기대하는 것이 이제 무의미해지고 AI 사용 능력에 따라 그 사람의 포텐셜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본다. 직무 중심의 채용에서 제너럴리스트 혹은 Problem Solver의 채용으로 축이 옮겨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AI로 대체할 수 있는 직무적 '역량'보다 직무적 사고, 실행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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