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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Dec 15. 2023

겨울 가기전 봐야할 전시;  장욱진 회고전




자화상, 1951



장욱진 회고전 관람 포인트


1. 친 자연주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이 그림은 1951년,  장욱진이 30대 후반에 들어선 나이에 그린 자화상이다.  전쟁 시대,  프록코트를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한국 현대미술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도시를 떠나 노모가 있는 고향으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모습에서 문명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작가를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도시문명을 의도적으로 벗어나 혼자 시골에서 칩거하며 자신의 작품 주제가 되는 해와 달,  산과 나무,  그리고 동물들과 조화를 잃지 않고자 했다.  같은 시기 한국 모더니스트 작가들이 서양 대도시에서 거주하면서 그린 그림과는 다르게 점차 사라져 가는 한국적인 풍토,  자연 감각을 필사적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2.  심플함


엽서  크기만 한 사이즈이기에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장욱진은 구도와 색조의 대비,  단순화시킨 형태로 앞으로의 화가 인생에서 추구하게 될 "심플함"을  보여주고 있다.  1973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작가가 추구한  단순함,  심플함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1951년에 그린 <자화상>에서처럼 까치와 해는 여전히 작가를 따라다니지만 작가의 한 획에 점 하나에 많은 것이 집약되어 있다. 세상 만라를 담은 한 획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장욱진이 추구한 심플함이 아니었을까.



3.  순수함


장욱진을 연상하면 아동화처럼 순수하다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전시에 같이 간 아이들은 장욱진의 그림을 보고 매우 친근감을 느끼고 함께 간 전시 중 가장 오랜 기간 전시장에 머물렀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단순화된 인물,  집,  새,  나무,  해와 달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다가 좌절감, 무력감을 맛보기도 한다. 좀 더 디테일하게 그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장욱진의 그림을 보면 아이들도 자신들의 이미지가 엉성한 것이 아님을, 그것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임을 인식한다. 장욱진이 오랜 수련을 통해 얻은 아동미술과 같은 단순한 이미지들이 아이들에게는 자유로움을 선사하나보다. 실제로 장욱진 전시에서 아이들은 전시장을 둘러보는 시간보다 오래 전시장 밖에 마련된 그리기 체험 부스에 더 오래 머물렀다.




<자화상>, 1973.




아이들의 마음속에  디테일하게 그리지 않아도,  지금처럼 그리는 것이 얼마나  '충분한 것'  인지,  나아가 그것이 얼마나  예술적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4.  조형성


장욱진의 그림을 보면 도자기 같은 질감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덧입히고,  날카로운 필촉으로 끓어내고,  두텁게 바르거나 옅게 칠하면서 다양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가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캔버스를 자유자재로  다루는지를 보면 작품  하나하나를 더 다층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장욱진은 이런 측면에서 자유자재로 유화를 다룬다.  수묵화 같기도 하고,  수채화 같기도 하고,  한국적 도자기 같기도 한 작품을 보며 작가가 어떤 목적으로 덧입히거나,  혹은 옅게 칠하거나,  펜촉으로 긁었는지를 함께 본다면 감상에 재미를 더할 수 있다.  





<까치>, 1958.





5.  까치


1958년작 <까치>를 보자. 캔버스를 유화로 덮은 후에  까치와 초승달을 남겨두고 촘촘히 긁었다.  특히 까치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남긴 선으로 표현했다. 추운 겨울을 나는 까치를 표현한 것일까?  장욱진의 그림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는 '까치'이다.  앞서 살펴봤던 1951년 자화상에서부터 까치는 줄곧 작가의 분신처럼 등장하는 동물이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 봤을 때 1958년작 <까치>는 전후의 궁핍한 상황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다.  





<까치와 마을>, 1990.




장욱진이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에서도 까치는 작가의 분신처럼 등장한다.  구름처럼 표현된 나무 형상 속 까치는 집과 개가 있는 지상세계로부터 떨어져 부유한다.  땅을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된 까치는 이전에 등장한 까치들보다 안정적이고 차분해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까치를 작가를 빗댄 동물이라는  인식하고 본다면 까치가 등장하는 그림이 더욱 흥미롭게 보일 것이다.  




6.  <진진묘>


장욱진 그림에 가족,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장욱진 자체는 가정적인 가장은 아니었다.  가족의 생활은 이순경 여사가 종로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책임졌고,  5남매도 키웠다.  장욱진은 시골에 따로 살면서 외롭고 고된 창작을 이어갔다.  장욱진의 자서전을 보면 그림과  술이 주를 이룬다.  작품 속에서도 단순함,  심플함에 이르기 위해 많은 것들을 덜어내고자 했듯이 장욱진의 삶에 있어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장욱진이 작품에서도,  생활에서도 극도의 심플함에 이르는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남들과 다른 가장임에도 존경을 마지않는 이순경 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를 보살상으로 그린 이 그림은 기도를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고귀한 기운이 전해지는 그림이다.  





<진진묘>, 1970.







눈도 감고 있고,  특별히 전할 말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이순경 여사의 존재 자체가 그러했을까. 눈으로,  입으로 남을 고치려 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수양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존재 자체가 보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자기 주위의 세계를 영적인 세계로 만드는 사람.  아내에 대한 존경 이상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7.  RM


장욱진의 대표작을 총망라하기 위해 개인 소장된 작품들까지 총출동된 이번 전시에서는 RM이 소장한 소장품 6점도 포함되었다.  장욱진 회고전인 만큼,  RM은 자신이 소장한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는 비밀리에 붙이겠다는 합의하에 소장품을 대여해 주었다고 한다.  용인에 위치한 장욱진 가옥에  찾아가면 그곳에서도 RM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장욱진 가옥에 위치한 카페에 "RM  픽"이라는 음료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용인까지 찾아갈 만큼 장욱진에 대한 RM의 관심과 애정이  전해진다. 이번 장욱진 회고전에 출품된 작품들이 워낙 훌륭해 작품 하나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궁금해진다.  "RM이 소장한 작품은 무엇일까?".




8.  가족





<가족>, 1955.





이번 회고전이 특히나 감동적인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6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온 장욱진의 <가족>이 깊은 울림을 준다.  장욱진뿐만 아니라 장욱진 가족도 이 그림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서,  팔고 싶지 않았다는 그림.  일본인 사업가에 팔려 일본에서 행방불명이 된 이 그림이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수소문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직접 찾아가,  개인 소장자의 벽장에서 찾아낸 그림이 간곡한 부탁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반환되었다.  좁디좁은 집에 옹기종기 가족이 모여있다.  장욱진 그림에서 가족은 많이 그려졌지만,  유독 이 그림만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 함께 그려진 도상이라 한다. 아버지와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일상적인 어느 풍경 하나가 마음에 확 와닿게 만드는 그런 장면이다.  




장욱진의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  그리고 이번 회고전이 이토록 감동적인 이유는 공기처럼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가족의 의미를 장욱진이 그것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향기를 불어 주듯이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얼굴에서 부처를 보고,  까치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자연과 아이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화가.  이토록 마음과 정신이 투명한 화가가 있던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장욱진의 의미가,  그리고 나의 가족이 주는 정겨움과 따뜻함에 한없이 감사해졌던 전시였다.  




2024년 2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의 감동을 누구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도, 남편과 둘이 가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서로 다른 포인트를 찾으며 추운 겨울,  한껏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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