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올림픽이 끝났다.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인간 최대의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들을 지켜보았다.
누구보다 뛰어나고, 타고났고, 비범한 재능과 노력들로 경지에 오른, 한마디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특출 난 이들의 향연. 최고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다져 나아갔을 선수들.
매일 같이 특출 난 재능의 향연을 보는 이때, 평범함에 대한 가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매일같이 탄생하는 스타들에 가려진 평범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 또한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학교수인 마리나 반 주일렌의 이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에서 그는 평범한 삶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방법을 다양한 문학작품과 철학을 인용하며 성찰한다. 그녀가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여러 작품들을 산책하듯 만나면서, 스쳐지나가고 있었던 우리의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들을 발견하게 된다.
평범함은 '메디어스'(중간)와 '오크리스'(산)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산 중턱 외딴 구석에 갇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들, 특출 난 재능이 없어 보편적인 성공의 개념이 부합되지 않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특별한 사람들 간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계를 허물고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이야기한다.
그는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레테"(arete)를 인용하며, 아레테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탁월함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탁월함의 기준을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닌, 자기 자신에 돌릴 때, 그리고 그렇게 평범하게 탁월한 하루가 쌓일 때, '아레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올림픽 선수들에게 하기 싫은 날이건, 특별한 날이건 고도로 체계화된 매일의 훈련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니체의 사례였다.
니체는 "평범한 자들에게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다. 어떤 한 가지 일에 통달하는 것, 곧 전문성은 하나의 타고난 본능이다"라고 주장했다. 비범하고 특출 난 "극소수의 인간들과 그 상위문화를 존재하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선명하게 구분 짓는 니체의 글을 보고 있자니,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괴팍한 천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던 니체는 말년에 이르러 <이 사람을 보라>에서 평범함에 대한 견해를 바꾸고, "어떤 것도 지금과 다른 것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미래에도, 과거에도, 영원히 말이다"라고 현재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며,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서 판단보다는 관용이 그에게 자리 잡았음을 알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가진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비판과 판단을 삼가고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까. 저자는 레비나스를 예로 들면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감적 상상력, 즉, "사람의 마음과 대상 자체의 현실을 꿰뚫는 시각"에서부터 관대한 시선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타자의 삶에 우리 자신을 투영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권위를 포기해야만 비판과 판단에서 멀어질 수 있다.
반면 그 사람에게 깊숙이 들어가지 못할 때, 우리는 "평범하다", "지루하다"라는 우월도 열등도 아닌 성의 없는 꼬리표를 붙이게 되고, 그 사람의 "드러나지 않은 신비"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완벽에의 열망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곧 비판적인 '나'를 포기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거둘 때, 다른 사람도 온전히, 그 사람 그 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난 왜 이렇지, 왜 이것 밖에 하지 못했지"라며 끊임없이 추궁하기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충분한 이 순간"을 살아 내는 것. 그것보다 비범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