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사적인 추억을 담고 있는 미술관이 있다. 언제 가도 조용히 언제나처럼 같은 작가의 그림을 보여주는 미술관. 소장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는’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화려한 소장품 전 보다 더 애틋하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미술관이지만 그 자리에 있어주고, 언제나처럼 김환기의 작품을 보여주는 환기미술관이 많은 예술인들에게 특별한 이유다.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은 김환기의 작고 직후에 설립된 환기재단에 의해 1992년 설립되었다.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미술관은 언제 가도 김환기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여온 환기미술관이 건물 보수 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으로 재개관했다.
김환기(1913-1974)는 기록을 많이 남긴 화가였다. 그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글을 썼다. 예술적 고민을 담은 기록들 속에서, 김환기가 예술을 통해 추구했던 것들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화폭 안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갔고, 예술을 완성시켰다.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의 사적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품을 찬찬히 따라간다.
1944년 김향안과 결혼해 성북동 집에서 그는,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울던(김환기, 1953)" 한국적인 자연을 캔버스에 담고자 했다. 꽃과 새, 나무. 그리고 1940년부터 수집한 달항아리와 기물들 또한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 양식에 담고자 했다. 여기서 달항아리는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한국의 자연이 낳은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
1956년 파리로 떠나서도 김환기의 예술은 고향인 남도에, 한국의 자연환경에 닿아 있었다. 그는 파리 아틀리에에서도 새소리를 듣고 마로니에 나무를 보면서도 고향을, 고향의 자연을 그리며 이렇게 쓴다. “조각달이건 만월이건 동창에 달이 뜨면 그만 고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 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 산천들(김환기, 1959).”
김환기 작품에서의 푸른색도 이런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동해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그런 바다입니다.” 김환기의 푸른색을 바라보면서 한국의 하늘과 바다를, 그리고 최소한의 점과 선으로 단순화된 새와 나무. 그리고 달의 이미지를 따라가 보자.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구상은 추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시기 김환기는 뉴욕에서 지내면서 ‘점, 선, 면’으로 응축된 추상의 정점을 향해 나아갔다. 점과 선들은 단순화되고 캔버스에 유화물감이라는 서양의 기법을 취하면서도 수묵화에 번짐 효과를 보는듯한 동양적인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긴 수양의 결과인 듯, 끝없이 이어진 점과 선들은 무한히 연결되고 서로 조응한다. 멀리서 보면 그의 고향 남도의 바다의 심연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하다.
그는 질문한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세계(자연)가 아닐까(1968, 김환기).”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들이 멍하니 밤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듯 명상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