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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an 13. 2021

평범하지만 평균은 아닙니다. #08

달랏에 두고 온 마음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도통 알아먹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대화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쌓였다.  모든 것에 신물이 나 그냥 어디론 가 떠나버리고 싶었다. 갑작스레 던진 사표에 회사는 달간 유급휴가를 줄 테니 복귀 여부를 정하라고 했다.

복귀는 생각하지도 않고 입과 귀를 꼭 닫고 쉴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저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말이 아닌 마음의 소통이 필요했다. 베트남의 소도시로 가기로 정하고 비행기를 탔다.


호찌민 공항에 내려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진한 향신료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에  어지러워 상쾌한 공기를 찾아 밖으로 나가자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 하늘로 퍼지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다다랐을 때 주변의 펍에서는 관광객 몇 무리가 술을 마시며 이국의 밤을 불태우고 있었다. 설레던 마음은 숙소의 잠긴 문에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나의 곤란한 표정을 읽은 택시기사님의 도움으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택시기사님과 나는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고 헤어졌다. 방에 들어서자 긴장이 풀려 잠이 들었지만 이내 골목의 소음이 나를 깨웠다. 창문 밖의 복잡한 전깃줄과 오토바이 소리, 노점에 옹기종이 앉아 아침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베트남에 온 것이 실감났다. 한참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베트남 여행 카페에서 한 친구가 현지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했었다.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만날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용케도 나를 찾아냈다. 그녀와 나는 호찌민 시내를 함께 구경하다 마음이 잘 맞아 내 목적지에 동행하기로 했다. 9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달랏’에 도착해 상당히 깨끗하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았다. 그녀 덕이었다. 그녀와 지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하루 종일 그녀와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과 멀어지는 것 같아 각자 움직여 보길 제안했다. 그녀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나는 좀 휴식이 필요했으니까. 그녀의 안색은 애써 모른체 하고 숙소를 나섰다. 동네 꼬마들 사진도 찍어주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호숫가를 거닐다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다. 혼자인 시간이 좋았지만 그녀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저녁까지 먹고 돌아온 밤, 각자의 시간을 보내자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려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회사생활이 너무 싫더라, 사람들과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 상사 모시기도 힘들고, 그냥 지금 하는 일이 나랑 안 맞는 건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안 맞는 것인지. 성과가 나도 그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사람들과 말도 하기 싫고 밥도 먹기 싫어서 여기로 도망친 거야. 너는 어때?”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언니, 저는요.”

항상 웃고 여행 계획으로 분주했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사이 맥주를 꺼내 왔다.

“오빠가 한 명 있는데 서로 안 보고 말도 안 해요. 한 삼 년 되었어요. “

나보다 한참 어렸던 그녀는 오빠와 다툰 이 후로 삼 년이 넘도록 이야기는커녕 얼굴을 대면하는 일도 없다고 했다. 얼굴을 까먹을 지경까지 이르러 하굣길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 사람이 오빠겠구나 했단다. 부모님조차도 더 이상 둘을 화해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지방에서 학교를 다녀 만날 일이 더 없다고 아마도 쭉 이렇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오래된 이야기를 사진첩을 넘기듯 차분히 이어갔다. 한 집에 살면서 그것도 몇 년이나 그렇게 지낼 수 있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부모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그 공간에서 해결책은 그저 학교를 멀리 다니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와서 화해를 하거나 개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자신은 가족으로부터 도망쳤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회사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해결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실컷 쏟아냈다. 부끄러웠던 일 그리고 찌질했던 이야기들을 앞다투어 이야기했다. 지금 입 밖으로 꺼낸 마음속 이야기가 부디 이 여행지에 머물러 주길 그리고 돌아가는 순간에 나에게 안녕을 고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슬펐던 이야기가 웃음으로 바뀔 즘 해가 떠올랐다. 마을 중심에 있는 큰 호수의 물안개가 솟아나는 태양을 감쌌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으며 서로 호들갑을 떨었다. 한숨도 못 잤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물안개가 걷히기 전에 호수로 달려 나갔다.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에 빠져있는데 배드민턴을 치시던 아저씨가 라켓을 내밀었다.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시합을 했다. 아저씨는 일하러 간다며 내일 또 이곳에 나와서 같이 하자고 했다. 아쉽게도 우리는 오늘 떠난다고 악수를 청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 행운을 빈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여행은 오늘까지였다. 그녀를 보내며 눈물이 찡긋 났다. 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 따위는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서로 헤어졌다. 둘 다 무거운 짐을 달랏에 놓고 나는 호찌민으로 그녀는 나짱으로 떠났다.


<그날 찍었던 아침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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