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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an 28. 2021

평범하지만 평균은 아닙니다.#10

우리는 인연이었을까?#2

우리는 인연이었을까.#1

우리는 인연이었을까.#1

어학연수를 마치고 복학한 학교는 여러 이유로 휴학한 친구들이 많았고 군대를 간 친구들도 많았다. 영 어색한 시절이었다. 복학생 동기들은 서로의 일본어 실력이 궁금했지만 구태여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재학생과는 친해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글보다는 입만 산 일본어를 구사하던 나는 같은 처지인 복학생 오빠들과 친해졌는데 후배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아 문자 폭탄을 받기도 하고 성적에 예민한 동기들의 눈총을 받아 인싸이지만 아싸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날도 그러한 이유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친하지 않은 한 선배가 내 옆에 앉아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오늘 뭐해? 우리 오늘 술 마실 건데 함께 갈래??”


대화는커녕 인사조차 나눠본 적이 없던 선배였다. 선배도 나처럼 일본에서 돌아와 막 복학한 복학생 중 하나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날 따나 나랑 같이 공부하러 다니던 친구가 남자 친구와 놀러 가서 혼자 서글프게 꾸역꾸역 한자를 눌러쓰고 있던 참이라 흔쾌히 따라가기로 했다. 


술집에 들어서자 술잔이 이미 한 바퀴 돈 모양이었다. 이 술자리는 누구와 누구를 엮어주고 몰아주고 신이 나있었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이런 모임은 첨이라 나도 모르게 함께 으쌰 으쌰 해서 커플도 만들어주고 선배들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캠퍼스 분위기에 취해 신이 났다. 그렇게 나를 초대해준 선배와 같이 학식도 먹고 술도 먹고 그랬다. 학기 말에 성적표가 나오기도 했고, 선배 덕에 실력자라는 헛소문은 사라졌다. (부모님은 슬퍼하셨다.) 다행히 하하호호 인사하고 시끌벅적한 평범한 학부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고마운 선배와의 만남에 단 한 번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람이 좋아서 좋은 사람이 모여드는 거지’(최고로 단순한 사람이다. 요즘 들어 느끼고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선배가 나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너 일본에 있을 때 혹시 유카타 입는 체험하지 않았어?”

“네! 맞아요. YWCA에서 한 거 오차노미즈 역에 있는 거요.”


선배의 말에 의하면 그날 그 체험에 본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날부터 나를 기억한 건 아니고 귀국해서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자기 사진 뒤로 나무에 소원쪽지를 거는 사람이 아무래도 나와 너무 닮아서 설마설마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튀는 사람이다.) 

휴학하기 전에도 이 선배를 본 기억이 없고 복학하고 나서도 그냥 복학생 중 하나려니 주의 깊게 본 적이 없는 선배였다. 그 선배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런데 나의 얼굴이 눈에 띄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니면 내 얼굴이 정말 특이해서 누가 봐도 알아볼 정도인 건가. 나랑 친해진 한 학기 동안 몇 번이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닐 수도 있어서 매번 망설였다고 했다. 선배가 가져온 사진에 있는 사람은 분명 나였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전날 같이 사는 언니들과 술을 몽땅 마시고 늦잠을 자서 해장도 못하고 헐레벌떡 간 체험이었다. 하마터면 못 갈 뻔했더랬다. (그 체험을 김치찌개 집에서 만난 그 친구와 함께 갔었다.)  

그곳에 이 선배가 있었다니. 듣고도 못 믿을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의 소도시의 한 대학에 다니는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일본에 갔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체험을 하고 사진 찍을 때 하필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한 앵글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몇 프로나 될까? 같은 시기에 복학을 하고 선배가 사진의 배경에 관심을 가졌고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그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줘서 만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온 우주가 도와서 만나게 해 준 찐 인연일까?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이것은 인연이다! 결혼해! 결혼해!"


 를 외치고 있다면 그 선배는 여자임을 이제야 고백한다. 온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난 그 선배 덕분에 쓸쓸하던 복학생은 졸업까지 즐거웠다. 이후 그 선배는 일본으로 돌아가 결혼을 해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나는 여전히 한국에 남았다. 그 시절의 연락수단인 싸이월드를 통해 졸업하고 4년 후엔가 만났었다. 건대역에서 만나 함께 회포를 풀자며 뜬금없이 사주카페에 갔다. 엉뚱한 구석이 나랑 닮아 좋아하던 선배였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그런 걸까? 더 보고 싶다. 이제는 싸이월드가 없으니 인스타그램이라도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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