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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Nov 05. 2020

평범하지만 평균은 아닙니다.#02

다이어트의 역사

“아! 이 바지도 그러네?”

언젠가부터 엄마가 사 온 바지 기장이 죄다 오른쪽만 짧았다. 질질 끄는 거 보기 싫어 접어 입으면 오른쪽은 항상 반 단정도 덜 접히는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바지마다 똑같아 ‘아마도 어떤 사정에 의해 한쪽만 짧게 만들기로 정했나 보다’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미련한 건지 둔한 건지 정신승리인지)

“야, 뚱! 바지 터지겠다.”

동생을 귀여워할 줄 모르는 짓궂은 오라버니의 말에 바지 기장의 비밀이 숨겨 있었다. 비밀이라는 거창한 말이 우스울 정도지만, 사실 내 오른쪽 허벅지가 유난히도 두꺼워 바지가 짧아진 것이다.

폭풍성장을 하고 있던 내 몸이 무슨 연유로 오른쪽 허벅지에 살을 몰아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허벅지로 인해 비만을 자각했다. 엄마도 더 이상은 못 봐주겠는지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다. 그것은 아침마다 생감자 주스를 만들어 먹이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날것을 초등학생인 딸에게 먹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뭐든 잘 먹는 딸은 살까지 빠진다니 꿀꺽꿀꺽 한큐에 끝냈다. 내가 이 생감자 주스를 먹을 때면 오빠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꼭 구경했다. 녹말의 맛과 생감자의 서걱거림이 요구르트와 만나 맛이 있을랑 말랑한 그런 맛으로 기억된다. 맛은 없는 쪽으로 하자. 이 이상한 감자 주스는 엄마가 일터에서 들은 비법으로 뱃살을 쫙 빼준다고 했다. 일리는 있다. 생감자 주스를 먹은 후로 화장실 가는 횟수가 늘었으니까. 그렇지만 이 주스는 내 뱃살도 허벅지 살도 빼주진 못했다.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다. 일요일 아침 아니 정확히 말하면 7시가 조금 넘은 새벽, 나와 룸메이트들은 곤히 자고 있을 시간인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야, 너 살 뺀다고 다이어트 약 같은 거 먹으면 안 된다. 알겠지? “

아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어. 일어나 앉아 되물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 보니깐. 일본에서 다이어트 약을 먹고 몇인가 죽었다는데, 그게 마약 성이 있어서 큰일 난다고 그러더라, 혹여 살 뺀다고 그런 거 사 먹지 말아!”

아빠의 으름장에 난 그만 웃음이 터져 때굴때굴 구르며 웃고 말았다. 룸매들도 반쯤 뜬눈으로 함께 듣고 있다가 다들 웃음이 터져버렸다. 초등학교 때 시작된 내 다이어트는 대학생이 된 그때도 해결하지 못해 언제나 다이어트 식품이나 효능이 있다는 음식에 그렇게 기웃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딸내미가 타국으로 떠났는데 다이어트에 빠져 아무거나 주워 먹을까 노심초사에 그 시간에 전화를 하신 것이다.

“우리 아빠 너무 하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니??”

초, 중, 고 시절은 물론 대학교 때에도 손에 꼽힐 정도로 최고 몸무게를 가진 학생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내가 탄 지하철 칸에서 내가 가장 살이 쪘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덩치값 해야지!"


언제나 내 뒤를 따르던 말들 속에서 이 말이 나오기 전에 덩치 값을 알아서 하느라 고군분투했다. 모임에서는 리더를 맡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달려야만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주목받는 게 좋은 것 같아.’

이게 진심인 줄 알았는데 자기 최면을 항상 걸어온 것이다. 이렇게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해냄으로 내가 남들보다 크고 살이 쪘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의 시선이 내 몸뚱이에서 성과로 옮겨지길 간절히 바랬다.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하는 것이 천성이지만 책임까지 도맡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남에게 내 콤플렉스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무언가 더 당당하게 있지 않으면 놀림거리가 될까 두렵기도 했고 남들보다 예쁘지 못한 것이 내 평가를 절하시킬까 항상 걱정했다. 악순환이었다.

“내가 좀 더 예뻤어봐, 살기가 더 쉬울 텐데.”

아가씨 때 입에 달고 살던 말들이다. 그런 고군분투 덕분에 이만큼이나 밥 먹고 살았나 싶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의 외모는 장점으로 통했던 적도 많고 외형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경우는 미미한 것이다.

예쁘지 않은데 일은 잘해 (내가 생각한 사람들의 평가)

일 잘하지 그분 (사람들의 평가)

언제나 전제가 외모인 내 생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은 결과를 가지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결과를 절하하는 일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사람들이 불쾌한 사람이라는 걸 한참이 지난 후 에야 알았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말라는 말은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이 담긴 말이라는 걸 마음으로 이해하기까지 39년이 걸렸으니 이론과 실제가 이렇게 다르다.


참으로 많았던 상처 주는 말들에 난 왜 한마디도 멋지게 받아칠 수 없었을까.

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같은 팀원이 뒷 풀이 장소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산유국이니? 몸에 기름이 덕지덕지야.”

쌍욕으로 맞대응했지만 좀 더 세련되게 대응햇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당신은 어째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하길 바란다면 좀 더 착하게 말할 수 없어요?”

꽐라가 된 놈에게 무슨 말이 먹혔을까 싶지만 여전히 나에게 들려오는 외모에 대한 이야기에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감출 수는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어질 이 긴 싸움이 그저 예뻐지기 위한 것은 아니다. 좀 더 건강히 살기 위한 노력이다. 요즘엔 거울을 보면서 ‘나 좀 예쁜데?’라고 이야기해준다. (옛다 칭찬) 외모에 들이는 시간이나 비용이 확 줄었지만 좀 더 나를 치켜세워 준다.


지나고 보니 외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콤플렉스가 내 인생을 흔들어댈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까. 무언가 본업에 충실해 보기로 한다. 나를 다시는 외모에 가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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