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루에나바께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까?
우리의 선택은 볼리비아 아마존 팜파 투어이다.
고생 끝에 도착한 아마존 강.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아마존 강 위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전설의 뱀인 아나콘다를 보러 가는 길은 지금 생각해도 괴롭다. 땡볕에 긴 장화를 신고 물이 허벅지까지 오는 진창을 계속 걸어간다. 준이에겐 허리까지 물이 닿는데 흙탕물 안엔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나콘다의 흔적을 찾아 3시간째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가이드가 앞장서고 뒤에서 따라가는데 우리 가족 외에는 다들 건장한 20대 서양 청년들이라 다리도 길고 체력도 어찌나 좋은지 성큼성큼 잘도 걸어간다. 이 중에서 우린 가장 나이가 많은 참가자 2명과 가장 어린 참가자 1명이었다. 울상인 준이를 달래 가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길 왔나’라는 불평이 머리까지 차올랐다. 아나콘다라도 보면 다행인데 긴 풀들을 헤치고 걸어가면서 가이드는 슬쩍 말을 흐렸다.
“건기엔 자주 보는데 우기에는 잘 못 봐. 그저께는 봤었는데......”
그저께라는 말에 신빙성이 없다. 다른 친구들은 ‘먹이를 줘가면서 키우는 아나콘다를 아마 어딘가에 숨겨 놨다가 보여줄 거야.’ 하면서 웃었다.
우리 가족이 한참 뒤처지자 사람들이 기다려 주었다. 우린 또 ‘우리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해.’를 연발했다.
‘기르던 거라도 좋으니 아나콘다야, 제발 나와 줘라.’
그러나 기대했던 아나콘다가 아니라 야생 악어였다.
악어가 우연히 물 밖으로 나왔다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는 걸 보고 지른 소리였다.
‘허걱, 이제껏 야생 악어가 사는 물속을 걸어 다녔단 말이야?’ 순간 오싹했지만 악어라도 봐서 다행이라며 다시 첨벙첨벙 흙탕물 속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힘들고 남들보다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준이는 불평 한마디 없이 끝까지 걸어 돌아왔다. 하긴 낙오하더라도 덩치가 커져서 우리가 업어줄 수도 없었지만.
당시엔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었고 아나콘다도 못 봤지만 훗날 이런 일들이 더욱 생생한 추억으로 미화되었다.
이런 투어는 시간과 운이 중요해서 언제 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팀(우리 가족과 스웨덴 커플)은 피라니아 낚시에서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운이 좋았던 다른 팀들은 많이 잡아서 튀겨 먹기까지 했단다.
그래도 우리에게 보상은 있었으니, 이곳에서만 산다는 핑크 돌고래를 찾아가 수영한 일이다. 회색 같기도 한 옅은 분홍색이 감도는 핑크 돌고래가 민물에 산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자외선 차단제 냄새를 맡으면 사람 가까이에 안 온다는 말에 영리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래만큼 날 감탄시킨 건 강물의 색깔이었다.
저녁엔 선셋 바에 가서 아마존의 지는 해를 구경했다.
투어 첫날 저녁엔 선셋 바가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젊은 사람들로 붐비더니 둘째 날은 우리 팀뿐이었다. 느긋하게 음악도 듣고 스웨덴 커플과 이야기도 나눴다.
우리가 카메라가 고장 나서 5개나 새로 샀다고 했더니 그 커플은 1년 동안 선글라스만 20번을 샀다고 했다. 햇빛이 약한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약해 선글라스가 꼭 필요한데 여행 중에 자주 잃어버리고 도둑을 맞았단다. 처음엔 고급 제품을 샀지만 20번을 사는 동안 점점 싸구려를 사게 됐다며 웃었다.
스웨덴 하면 삐삐가 생각난다는 이야기엔 그쪽 남자 친구가 자신은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너희는 밤에만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책 보는 모습을 못 봤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내가 버리지도 못하는 책들을 끌고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우리도 책! 본다. 적어도 ‘삐삐 롱 스타킹’은 읽었잖니.
해가 지고 난 후 선 셋 바를 나서면 밤하늘은 다음 순서로 준비했다는 듯 은하수까지 보여주었다. 반짝이는 반딧불 사이로 배가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면 별이 머리 위가 아니라 앞에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