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닐다맛보다 02 포르투, 리스본, 카스카이스, 라구스, 파루, 마드리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릴드 뽈뽀Grilled Polvo'는 우리의 삼겹살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집에서도 문어 스테이크를 자주 해 먹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삼겹살이 떠오르듯 여행 내내 내겐 뽈뽀 요리가 그렇게 자주 생각났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만난 음식들
나는 미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킵고잉이다.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만난 음식은 뽈뽀(Polvo), 즉 문어 스테이크와 샐러드이다. 대서양과 지중해에 면한 도시들에서는 해산물이 일상적인 식재료다. 그중에서도 그릴에 구워 올리브오일과 레몬을 더한 문어 요리는 단순하지만 꽤 괜찮은 맛을 낸다. 이 문어에게서 이국적이지만 익숙한 향기가 느껴져 익숙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우연히 들어가거나, 이리저리 비교 검색해 찾아간 10곳 레스토랑을 소개하려 한다.
*일러두기
여기서 등장하는 모든 레스토랑에는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는 문어 요리에 한해서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므로 해물밥, 빠에야 등은 별도의 편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문어 스테이크(Grilled Octopus)
포르투와인 투어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자, 햇살이 강렬하게 건물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 도우루강 변 레스토랑들은 이미 저녁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러 레스토랑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결국 마음이 끌린 곳은 이곳, '텡페루 두 마리아'다. '오늘은 뽈뽀 스테이크다!'라고 메뉴는 먼저 정한 상태였다.
때는 6월의 끝자락. 강바람은 여전히 제법 차가워 겉옷을 챙겨야 했다. 실외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라 기다려야 했지만, 실내 테이블도 괜찮냐는 질문에 바로 입장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강가를 거닐며 도우루강 변의 저녁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식사 장소는 따뜻한 실내로 선택했다.
맥주를 마실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하우스 와인을 주문했다. 꽤 많이 담아주셔서 식사를 마칠 때까지 목을 축이기에 적당했다.
이 레스토랑이 끌린 이유는 단순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타일의 초록색 패턴의 외관이 매력적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돌벽과 원목 바닥이 어우러진 실내는 고즈넉했다. 낡았다기보다 세월이 만든 깊은 멋이 느껴졌다.
또한, 이 가게의 뽈뽀 스테이크는 다른 곳과 분명히 달랐다. 샐러드라고 해야 할까, 반찬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식으로 말하면 '나물'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한 맛도 정말 유사했다. 알감자와 올리브는 기본이었지만, '나물'을 곁들이는 곳은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제야 식당 이름을 'Tempero텡페루(양념, 조미료)'라고 지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Tempero d'Maria | 포르투갈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해 보면, '텡페루 두 마리아'라고 한다.
**실내가 다소 어두운 관계로 사진이 흔들려 아쉽다.
주소 | Av. de Diogo Leite 278, 4400-111 Vila Nova de Gaia, Portugal
영업시간 | 월, 수~일 12pm~11pm, 화 휴무
연락처 | +351-963-788-420
리스본 타임아웃 마켓(Timeout Market)은 꼭 가보라는 B군*의 추천이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음식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많기 때문이다. 포르투에서 산 벤투 역에서 먼저 경험한 타임아웃은 다소 아쉬웠다. 그래서 리스본 지점도 큰 기대는 없었고, '벨렘지구로 가는 길에 가볍게 들려보자' 정도로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예상과 달랐다. 아마도 이곳도 예전엔 기차역으로 쓴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건물의 규모가 엄청났다. 기차역과 항구가 근처에 있으니, 본래 마켓(Mercado)로 쓰이다가 무역 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변모하고, 거주지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관광객 중심의 식당가로 변한 듯했다. 반대편 일부 공간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전통시장(Mercado)이 있었다. 다만, 오후 12시가 넘어 도착해보니 이미 셔터가 내려가 있어 구경은 할 수 없었다.
타임아웃 안에는 정말 없는 음식이 없었다. 포르투갈 요리부터 아시안, 아메리칸, 또 다른 유로피안 등 다양했다. 하지만 그만큼 선택하기 어려웠다. 오랜 기다림을 피해 결국, 무난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익힌 감자를 으깨서 (메시 포테이토라 불러야 할까?) 플레이팅하고 그 위에 구운 문어 다리가 올려져 있었다. 처음엔 양이 적어 보였지만, 막상 먹고 나면 그럭저럭 포만감이 있다. 신기하다. 문어는 부드럽고 쫄깃했으며, 감자의 크리미한 식감이 잘 어우려졌다. 올리브오일 향이 은은하게 퍼져서 기분 좋은 따뜻함이 있었다.
공간은 크고 탁 트였지만, 인파가 많은 만큼 데시벨도 높았다. 그래서 자리 찾기란 쉽지 않았다. 눈치 게임을 해야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찰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가방을 두고 자리를 맡아둘 수도 없어 나혼자 여행자는 참 어렵다. 옆 사람에게 자리 좀 맡아달라고 부탁할까 하던 중, 음식이 완성되었다는 콜이 울렸다.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일요일 점심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제법 괜찮았다.
*B군은 가끔 DM으로 대화하며 포르투갈 여행을 먼저 한 경험을 가능한 많이 공유해주었다.
주소 | Mercado da Ribeira, Av. 24 de Julho, 1200-479 Lisboa, Portugal
영업시간 | 월~일 10am~00am
연락처 | +351-21-060-7403
홈페이지 | https://www.timeoutmarket.com/lisboa
궁금했던 타파스바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나에겐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그래서 힙한 식당 대신 현지인이 자주 갈 것 같은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블럭 안쪽으로 들어갔건만 지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오늘의 수프'와 뽈뽀, 그리고 가게 이름과 같으니까 스페인 바르셀로나 맥주 '에스트렐라 담Estrella Damm'을 주문했다.
이곳의 문어는 다리 한 조각만 주지 않았다. 비주얼이 가장 완벽하달까? 플레이팅은 집에서 내어준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어서 좋았다. 오늘의 수프는 피쉬 수프라 했다. 살짝 추어탕의 걸쭉함과 미역국의 시원함 사이의 맛이었다. 국물까지 더해지면서 참 든든하게 맛있게 먹었다.
실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며 매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좁지만 따뜻한 공간, 어쩐지 동남아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동양적인 기운이 느껴졌달까. 식사를 마칠 즈음, 사장님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나오셨다. 마치 순회공연 하듯 모든 손님에게 사진을 찍어주시곤 사라지셨다. 계산서를 부탁하자 사진과 사탕과 함께 전해주셨다.
혼자 여행 중이던 나에게 그 한 장의 사진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카스카이스를 생각할 때면 떠오를 진한 추억 한 조각. 그날의 따뜻한 마음과 작은 친절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A Nova Estrela(아 노바 이슈트렐라) | 직역하면, '새로운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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