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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May 31. 2024

비선조직과 왕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집권 2년차이던 1609년, 경연을 거부하는 광해군에게 30대 중반 젊은 관료, 사간원 정언(正言) 김치원이 말 그대로 정언을 올린다.      


“전하께서 저희들과는 토론할 생각이 없으시고 매일 궁궐 밀실에서 광핵관(광해군 핵심 관계자)만 만나시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각주1)        


광해군이 발끈해서 대답하는데 참 광해스럽다.      


“니가 봤어?” (각주2)    


경연은 임금과 신하들이 ‘공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다. 광해군은 ‘사적’ 소통에만 몰입했다. (각주3) 


그가 소통한 부류다.     


_ 비선조직 광핵관 

_ 무당들

_ 김상궁 (각주4)    


경연에는 온갖 핑계로 불참했던 광해군이지만 무당과 굿판 벌이는 자리, 정적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자리에는 오픈런이다. 


열일 제치고 참가했다. 


그래서 광해군 정권이 성공할 지는, 신묘한 무당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다.      


[신간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에서 발췌함]



주1) 강연(講筵)은 오랫동안 중지되어 여러 사람들의 의사가 진달되지 않아 언로(言路)가 막혀 있습니다. 기도와 푸닥거리를 일삼고 궁중의 말[馬]을 길들이지 않아 좌도(左道 풍수, 점술, 사주팔자)가 흥성합니다. (...) 전하께서 즉위한 이후 지금까지 몇 년이 되었으나, 한번도 유신 정사(儒臣正士)들과 함께 경학을 강론하고 국가의 큰일을 자문하신 일이 없습니다. 매일 측근의 총애하는 신하들과 함께 깊은 궁궐 안에만 계시니, 거이기양이체(居移氣養移體 환경에 따라 사람의 모습이 바뀐다) 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법이니 전하의 마음이 어떻게 사심이 없을 수 있겠으며, 전하의 덕이 어떻게 흠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기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전하의 청명 순수한 마음이 끝내는 점차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광해군일기 중초본> 광해 1년(1609년 8월 10일).


주2) “기도하고 푸닥거리하는 일은 궁내에 혹 있겠지만, 이것이야 어찌 모두 알 수 있겠는가? 이른바 좌도라고 하는 것은 어떤 도를 가리키는 것이냐? 아울러 물어 아뢰라.” <광해군일기 중초본> 광해 1년(1609년 8월 10일).


주3) 왕은 한결같이 핑계를 대어 미루며 깊은 구중궁궐에서 오직 근습(近習)들과만 어울리니 덕이 성취되는 아름다움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광해군일기 중초본> 광해 1년(1609년 9월 16일). 


주4) 이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이첨이 세 가지를 섬기는데, 세자빈을 섬기어 세자를 속이고, 정인홍의 제자를 섬기어 정인홍을 속이고, 김상궁을 섬기어 왕을 속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진귀한 노리개와 좋은 보물을 바쳤다. 이이첨의 아내 역시 교활하였는데, 부부가 주야로 모의하여 함께 편지를 써서 안팎으로 내통하며 침식할 겨를도 없었으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헤아리지 못하였다. <광해군일기 중초본> 광해 5년(1613년 6월 19일 12번째 기사). 김상궁 본명은 김개시(介屎), 한글로 김개똥이다. ‘이이첨이 김상궁을 섬기어 왕을 속인다’는 실록 기록에서 김상궁이 가진 파워를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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