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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21. 2021

각자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

덜어내기

"언니, 내일 같이 계곡갈래? 가까운 관악산으로 어때?"

  2년만의 통화치고는 꽤 산뜻하고 연결성있는 대화, 솔깃한 제안.

한여름 휴가철 시의적절하게 전화를 걸어온 마당발 동기는 그렇게 나를 훅 17년 전으로 데려다 놓았다. 마치 어제도 우리가 같이 점심먹고, 야근하고, 내일보자며 헤어진양.

20대부터 함께한 동기들과 현재를 이어간다는게 바로 이런것일까? 치열하고 분주했던 사회생활의 처음을 같이한 그들과 몇년 주기로 연락이 속되고 있다. 어느 조직이나 적극적으로 주도성을 지니고 연락을 해주는 이들이 만남의 매개체가 된다.

부지런하고 다정한 그들 덕분에 우리는 근근히 서로의 안부를 알아가고 어색하지 않은 시간의 연결성을 갖는다. 잠시 단절되었던 인간 관계가 복구되고, 끝난줄 알았던 사람들의 그 후 이야기를 듣게된다.

가령 신입때 옆 부서 실장님의 유치원생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군대다는 이야기, 천년만년 회사의 시조새가 되어있을 줄 알았던 선배들이 가정으로 돌아간 , 까마득히 어린 기수 후배들이 팀을 이끌어가는 위치로 역변한 소식, 상상할 수 없는 조합으로 탄생한 사내 커플 정.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구전 설화같은 이야기부터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까지 공존한다. 까무룩 잊혀졌던 이름이 소환되기도 하고, 안타깝거나 마음상하는 소식을 대면하기도 한다. 위기를 극복했다면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졌을지 모를 회사사람들의 근황을 그렇게 듣는다.


  조직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에 성공한-혹은 일로 기운 삶을 택한 댓가로 회사에 잔류한 소식 전달자들의 근황은 또 어떠한지. 힘들다는 투정이 무색하리만큼 가열찬 시기를 견뎌내고 넘어선 그들의 발자취는 실로 대단했다. 인고의 시간을 뚝심있게 버텨냈고 어려운 고비를 현명하게 넘겼다. 야생의 정글같은 밥벌이 세계에서 기특하게 승승장구하는 그들을 볼때면 잘키운 자식을 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싶다. 대견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니, 사실은 가슴 한편이 아리고 마음이 쓰라리기도 하다. 신입 시절 함께 꾸던 막연한 꿈을 구체화시켜 실현한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선망, 질투, 열패감 같은 복합적 감정이 섞여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점철되고 회사 역시 승자 독식사회이다. 중도 탈락해 패잔병이 된듯 가정으로 들어선 나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PPT를 비쥬얼하게 만들어내는 기술, 트렌드를 읽어내는 통찰력, 소비자의 니즈를 분석하는 냉철함,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자연스럽게 소멸되어갔다.

해외 모처의 거리와 백화점들을 시장조사란 명목하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던 나는 이제 마트와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브랜드 컨셉과 방향성 회의, 품평회 준비로 편두통에 시달리는 대신 사춘기 아들과의 정신적 줄다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신학기 착장조사를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아들을 픽업해오고, 스케쥴판대신 아이들 문제집 답안지를 들고다녔다.


  나나 그녀들이나 우리는 서로의 삶을 샅샅이 알지는 못한다. 어느쪽이든 한쪽이 기우는 위태로운 삶을 휘청이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쪽 다 고단한 삶은 피차 마찬가지일터. 워라벨과 균형, 양립이란 단어를 삶에 접목하기에는 어쩐지 허상이 존재할것만 같다. 

 단지 분명한 것은 그녀들과 나의 업무에는 목적지가 다르고 방향성이 다를지언정 추구하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행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오늘 하루 알차게 바삐 살아내고 있을거라는 것이다.

  회사에 남아있는 동기들과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만일 그때 내가 그랬다면?'  대입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서로 가보지 못한 길의 과정을 짚고 말로를 살피는 과정에 가깝다.

한때는 비슷한 집단 내에서 같은 출발선상 놓여 유사한 노선을 밟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점심 시간 약속을 잡고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 농번기 노동요부르듯 회사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고 나만 그런 아니라는 위안을 받고 동질감을 느꼈다. 서툰 삶에 위로를 받고 서로의 힘듦을 보듬으며 한결 나아진 오후 업무시작하는 힘을 얻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아서 각자 뿔뿔이 흩어져 제갈길을 가게 되었다.

이제 같은 선상에서 벗어나 각자 가지 못한 자리 탐하고, 넘보고, 저울질해보며, 가늠해본다.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처럼 서로를 대입시키고 투영해본다. 다른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서로를 반추해볼 수 있는 선택지를 남겨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득과 실을 예상하며 일장일단이 있음을 알아간다.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기도, 가지 못한 길에 자책하기도, 그래도 다행이라 여기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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