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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20. 2021

원플레이트 할당량

덜어내기

  먹는다는 기본적인 행위는 인간의 본연의 욕망인 동시에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근래에 원래의 의미에서 보다 더 나아가 맛을 연구하고, 찾아가고, 리뷰하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태를 반영하듯, 혹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듯, 이도 아니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듯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영상매체에서는 맛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듯 다양한 프로그램들의 향연이 펼쳐다. 개개인은 정보의 범람과 더불어 본인이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맛 탐미주의자들이 되어간다. 동네별 맛집 정보를 꿰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이국적인 식재료까지 서슴없이 시도해 레스토랑 못지않은 요리를 양산해낸다. 한정식집 못지않은 12첩 반상 사진을 SNS로 접하는 일은 너무 흔해졌고 일본 잡지에서나 마주하던 캐릭터 도시락들은 똥손인 나에게 심한 무력감마저 안겨주었다. 

  이 세계에서 내 요리는 감히 내세우거나 비집고 들이밀 틈이 없다. 그저 집안에서만 유효하 근근히 효력을 발휘한다.


  나의 음식은 한마디로 말하면 찌꺼기 요리이다. 심하게 과격한 표현이지만 달리 에둘러 설명할 우아하고 중화된 표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패션처럼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요리의 세계에서 삼각 플라스크같은 실험 도구들이 등장하며 분자 요리가 성횡하던 때가 있었다. 남편은 (비)웃으며 그에 비견해 유통기한 임박한 요리, 분리수거를 원천 봉쇄하는 요리라는 뜻에서 그렇게 명명했다. 폄하의 의미였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트에 가면 유통기한 임박 할인 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쟁취해 구제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져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루 이틀 뒤면 찌꺼기, 쓰레기가 될 위기에 처한 식재료들에게 재활의 손길을 내밀고픈 말랑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반값 이상의 할인된 금액으로 랜덤의 식재료 득템하는 기분은 1+1 상품이 주는 포만감과는 또다른 희열을 안긴다. 환경보호와 가정 경제에 일조한다는 일거양득의 이점 있다.

그렇게 수집된 재료들은 그날의 식탁에 올라 당일 소비된다.

  상차림 또한 찌꺼기 요리법에 상당히 부합되는 방식이다. 식사는 대부분 개별로 하나의 접시에 담아 제공한다. 배급받듯 주어진 원플레이트 할당량은 각자 묵묵히 해치워야할 몫이다. 섭취량을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고 편식을 예방할 수 있고 설거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좀더 부지런해지면 5종 셋트의 과일, 채소가 가득 담기고 밥의 비중을 최소화한 저탄고지의 식단을 차릴 수 있다. 마치 원그래프처럼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영양 불균형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다.

유아식이 시작될때부터 인당 하나의 접시를 부여받은 아이들은 다행럽게도 무엇을 주 일단 싹싹 다 비운다.이는 우리집의 불문율이자 전통과 의무처럼 되어버렸다.

간맞추기에 취약한 극과 극의 일률적이지 못한-하지만 나는 재료 본연의 신선함을 살린 저염식이라 주장하는-형편없는 요리를 먹고도 180cm에 육박하게 큰 아들1을 보며 안도했다. 엄마 손맛과 아이의 신장은 꼭 비례하지는 않는 모양인가보다. 내 입장에서는 공평한 세상이다.

  

  아이들은 학교 급식보다 맛없는 요리를 양산해내는 자로 나를 진단내렸다.건강상, 경제적인 이유로 외식을 잘 안하다보니 아이들이 비교 대상으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급식이다. 준 입맛의 기준도 급식이 집밥은 몹시 허전하고 모자른 맛, 피자나 치킨은 과도하게 짠 맛으로 나름의 단계를 매겨놓았다.

  아이들의 불호 메뉴 중 카레가 있다. 이만큼 소스와 재료가 확실한 재료가 또 있을까만 늘 맛의 변수가 생기고 과하게 들어간 부재료들이 싫단다. 브로콜리 너마저도…불만이 제기되는 카레는 본연의 재료인 강황보다 밀가루와 합성첨가물 덩어리가 많이 들어가기에 자주 올리지 않는게 낫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해본다.

추측컨데 아이들의 미래의 배우자들은 내 덕에 이미 음식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비교적 손쉽게 거머쥐게 될 것이다.

  

  불만들에 크게 괘념치 않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여서 다른쪽으로 보완해주려 애를 쓰고 있다. 그나마 음식간의 조합에 관해는 궁합이 맞는 것과 상극인 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지각을 갖추었다. 오이와 당근, 두부와 시금치, 콩과 치즈는 한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 미역국에 파는 넣지 않고, 소고기는 깻잎과 내고, 제육볶음에는 표고버섯을 첨가한다.

아토피가 있었던 아들1을 위해 케일, 치커리, 양배추 등 초록의 싱그러운 엽록소들로 녹즙을 제조했다. 농약 대한 우려로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구비했고 지문이 닳아 없어질것처럼 닦아냈다.

  몰론 늘 자연친화적인 식단만 고집할 수는 없다. 편하게 살려고 먹는 것이기도 하기에 손쉬운 방도를 찾아 적극 수용하는 편이다.

그럴때는 밀키트만한 것이 없다. 시간과 공을 들인 원래의 요리보다 쉽고 빠르게 업체의 손을 빌리는 이런 요리는 늘 찬사와 각광을 받는다.

  이따금 외식을 할때면 취사선택의 기로에 선다. 집에서 잘 해먹지 못하는 번거롭고 어려운 음식일 것, 탄수화물보다 단백질 위주의 식단일 것, 분위기는 허름해도 위생적이며 연륜있는 노포일 것이 나름의 기준이다. 더불어 맛집 도장깨기를 시도할때도 있다. 백종원 아저씨가 평양 냉면의 슴슴함을 논하고 진주 냉면의 화려한 고명을 건져먹는 장면 앞에서는 나도 속수무책이니까.


  자주 가는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소시지와 베이컨을 집으로 유입하는 날이면 욕망 풀셋트의 브런치가 차려진다. 금지된 욕망을 허하고 입맛이 호사를 누린다. 욕망의 사다리를 어디까지 올라갈지 조율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내 역할이다.

가급적 정제수와 천일염, 국산콩 등 간소하고 정갈한 재료로만 채워진 전통 된장을 찾아내야하고, 원유 100% 체세포 1등급 우유와 무항생제 유정란을 확보해야한다. 모르는 화학용어 대신 아는 원재료가 많이 적힌 상품을 선택해야한다. 이를 위해 생협과 초록마을을 넘나들며 고가의 최상급 상품을 집어든다.

엄마 손맛을 대신 내주는 반찬가게표, 양심의 가책이 덜한 생협표 반제품, 규격화된 입맛에 맞춤형인 인스턴트 메뉴 사이로 수줍게 재료와 영양에 초점을 맞내 요리가 자리한다.

  그렇게 혼재된 양상을 띤 오늘의 식탁을 차리기 위해 조리대에 선다. 나폴레옹이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병사들에게 커피를 먹였듯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고카페인 커피우유를 홀짝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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