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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Jun 02. 2022

헤아릴 수 없는 일의 무게

밀어내기

  「유퀴즈」나 「직업의 세계」, 「극한 직업」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만일이란 가정하에  영상안의 세계로 들어가 그랬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본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을 품며.

 요즘 방송에서는  화면에 비치는 직업인들을 화려하게 미화된 모습으로만 조명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현실적인 고충이나 당면한 문제들에 관해서 가급적 소상히 밝히는 입장이다.

 정보가 만연한 사회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일정 부분 알아낼 수 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 어딘가의 지점에서 아닌 건 왠만큼  걸러낼 수도 있다. 적확한 판단에서 나온 현명한 지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리석은 우를 범하는 판단은 거둘 수 있을 테다.

 

 어설펐던 학창기의 진로 선택기를 떠올려본다. 중•고교 좀더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구체적인 진로 교육을 받았더라면,  졸업장을 딴 후 좀더 일찍 사회에 편입되어 현실을 자각했더라면, 부모님의 실질적인 조언을 잘 새겨들었다면후회로 점철된 과거를 반추해본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정해진 굴레를 이고 지고 야할 순리가 존재한다면, 운명의 수순처럼 '그랬더라도' 돌고 돌아 지금과 크게 다를바 없을거라고 예상한다. 디 천성과 적성, 본연의 성격이 쉽게 변하겠는가! 아무리 외부 요인과 후천적 변수가 있다한들 결국은 내가 했던 일과 유사한 의 일을 업으로 삼으며, 또다른 선택의 기로에서 두리번대고 있었을 것이다.


   삶을 좀더 쉽고 간결하게 살아내못한 것 아쉬움이 든다. 실속없이 번잡스럽게 바쁘기만 했다는 피해의식에 억울함을 토로다.

 .순.노.동이라 불리는 일들을 업으로 삼았다면 어땠을 자주 상상해 본다. 가령 우체국에서 스탬프를 찍는 공무원 같은...분명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일의 무게가 존재할터인데 피상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미루어 짐작해본다. 이런 종류의 일이라면 정신만은 자유로울 것이라고 멋대로 판단내리며.


 아주 오래전 동대문 방산시장에 피바다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기함을 토할 만큼 잔인한 명칭의 그 극장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거기서 연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다 염색'은 몇 번 가봤다. 울퉁불퉁 일률적이지 못한 돌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막염집, 마치 인도의 노천 염색처같은 .-인도인들은 계단식 논밭처럼 층층이 자리한 여러 개의 웅덩이에 각 다른 염료를 풀 수작업을 통해 막염 작업을 -마치 소규모 온천탕럼 보이기도 하는 인도 보다 규모는 훨씬 협소하지만 동질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교집합이 있는 그곳은 도심에서 보기 드문 수공업 현장이었다. 색 조합의 달인이 륜에 기반을 둔 노련한 감각으로 스피디하게 원하는 결과물을 완성해내었다. 속도와 비례하는매력적인 결과물에 품평회를 앞둔 디자이너들의 의뢰가 끊이지 않다. 도 자주 작업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디자인실 후배들과 이런 우스갯 소리를 나눴다.

"회사 그만두면 우리가 막염집 여는거 어때? 누구보다 색상에 민감하니까 이색안나게 BT 잘 맞출 수 있는데...각 회사 재경팀에서 판관비로 딴지걸지 못하게 재작업 없이 한번에 잘 맞춰줄 수 있잖아? 서울에 막염집 두 군데밖에 없 우리가 해볼까? "


 극한 직업-어묵공장편을 본 적 있다. 어묵 제작이 과연 '극한 일'에 해당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 속에 그려왔던 고단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은 이런 곳이 아닐거라고 우매한 판단을 내렸다. 화면에 비치는 그들의 애환과 노고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전달해주는 내용조차 있는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좁은 시야로 필터링하며 그 이면에 담긴 모습을 간과고 말았다.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반죽을 덜고, 튀기고, 자르고, 다듬고,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며 어느 한 부분만 맡으면 된다는 홀가분함을 먼저 올렸다. 포승줄로 얽어  정신의 수고는 내려놓고 육체만 고단한 노동의 세계에 담궈놓으면 되는 일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했다.


  런 어리석은 판단의 오류는 뿌리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무례함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성실하고 묵묵히 업을 수행하고 있었을 분들에 대한  폄하였다. 히 신성하고 수고로운 업에 대해 생각없이 몸만 고단한 단.순.노.동이라고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정의내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초집중 고밀도 업무이며 경력과 연륜이 중시되는 전문직이다. 다른 비숙련자로 대체되어  바로 투입 불가한 애매한 일이란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말랑한 마음으로 건성건성해도 될 성은 아닐 것이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가까이서 접해봐야 그 이면을 들여다보며 실상을 알고 반성하게 되는 법이다. 아마 내가 어묵공장이나 막염집, 우체국에서 일주일만 근무를 해보았다면 감히 이런 언급은 거두었을 것이다. 일의 경중을 함부로 논해서는 안되는 일임을 깨닫고는 왜곡된 직업관을 바로잡았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게 무엇이든 마음대로 서는 안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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