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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Dec 07. 2021

조금의 불편함을 참을 수 있는 마음

참아내기

  금손 능력자라 아이들의 소풍 도시락을 모형 완제품처럼 기발하고 깜찍하게 싸는 사람들이 있다.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냉장고를 부탁해」나 「편스토랑」의 셰프, 연예인들처럼 단시간 내에 뚝딱 예술작품같은 요를 내놓는 집도 있다.

샘나고 질투나지만 요리는 일말의 소질과 관심도 없는 걸 어쩌겠는가!

심미적인 멋 기깔나는 맛 그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는 나는 오로지 청소와 정리에 열을 올릴뿐. 그런데 그마저도 대로 되지 않으니...

고장의 손을 타고났는지 산지 얼마 안 된 청소기를 그  A/S센타에 2번이나 맡기고 말았다.

고장 나지 않는 튼튼하고 가성비 좋은 청소기가 어디 없는걸까? 지인들의 생소리를 듣고, 인터넷에 물었다. 고가의 국민 청소기부터 마성의 제품을 흉내낸 모품까 차고 넘쳤다. 하지만 자주 고장이 나더라도 아직은 쓸만한 것을 놔두고 중복된 아이템을 또 들이는 것이 맞는걸까? 자문하며 보유하고 있는 도구들의 수리비가 새제품 금액을 육박하지 않는한 버텨보기로 한다.

  지 내가 싸리비로 바닥을 쓸고, 쭈그린 자세로 부자연스럽게 바닥을 닦고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단지 최신 트렌드와 합리적 편를 앞세운 제품들이 아닐 뿐 집의 청결 유지에는 그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가 지출할 마음을 접고 조금 불편한 수고로움을 감한다면  말이다.


  전자제품처럼 부피가 큰 것, 금액대가 나가는 것, 이미 있는 것을 중복 구매해야할때 그 물건 자리와 위치를 쉼없 고민한다. 존재의 이유가 타당한지 적합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전 직장에서 야근 수당으로 받은 피, 땀, 눈물의 결정체인 안마 의자의 말로를 떠올려봤다. 저렴한 보급형 제품은 살 당시에만 만족도가 높았고 기능성은 현저히 떨어져서 생각보다 활용도가 낮았다. 더구나 이것 역시도 중간에 어김없이 A/S다녀왔고 그 사이 남편은 고가의 신제품을 사달라고 종용했다.  광고중인 그 기계는 분명 편히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명목하에 집에서 존재의 위엄을 드러내고 아이러니하게 주인공인양 자리할 것이 뻔했다. 한결같은 소신 밝히며 나 과감히 거절했다. 필시 고가의 신제품도 별수없이 보급형의 수을 따를 것이라며.


  전자기기처럼 구매에 신중을 기하는 또 하나는 도서이다. 적어도 마음의 양식을 쌓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부끄럽게도 척척 카드를 긁지는 못한다. 서점에 가서 반짝이는 빳빳한 신간들을 구경하고 종이 내음을 흡입한 뒤 중고 도서 들이거나 도서관으로 향한다. 주 2회 도서관에서 어깨에 한  무거운 책을 이고 돌아오는 길이 번거롭지 뿌듯하다.

고서의 내음, 신간이 꽂힌 매대에서 읽고 싶던 책을 선점해 집어드는 재미, 아이가 아할만한 프로그램들이 그곳 있다. 공공도서관은 공원이나 박물관처럼 의적절하게  아이에게 맞는 양질의 교을 제공해주는 최적의 장소였다.

  장대한 장서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분류 코드와 기호에 맞게 아이들과 나의 여가를 함께할 반려 도서를 선택해오는 것은 시간과 노동이 드는 일이지만 큰 보람을 안긴다. 그냥 끌리는대로 빌려오기도 하지만 쓸데이 계획적인 나는 학년별, 연령별, 교과연계별 필독서 리스트를 작성했다. 되도록이면 미리 탐독 후 읽을 필요성에 의이 가거나 나이보다 이른 수준 높은 도서는 재조정을 했다.  나아가 세시풍속에 맞춰 절기별, 명별로 읽혀야할 목록을 정하고, 학사일정에 맞게 월별 리스트를 업데이트했다. 가령 새학기에는 반장 선거나 투표에 관한 도서, 4월 과학의 달에는 탐구서, 6월 호국의 달에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책 등 나름의 연결 고리를 만든 것이다. 지루하고 따분해 보이지만 꼭 읽혀야하는 책은 기획상품처럼 아이들이 원하는 흥미 위주의 책과 간간히 섞어서 대여했다. 책의 재미에 빠져들어 늘 가까이,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이렇게 아이들 전용 북 큐레이터처럼 불균형적 지적 발달을 지양하고자 반강제적 독서를 슬쩍 종용한다. 가치관과 도덕적 신념, 사고방식이 확고하게 성립하는 시기에 균형잡힌 지적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금이라도 일조를 하고 싶어서.


  나처럼 심연에 자리한 충동 구매 욕구를 잘 다스리며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사람이 또 있다. 아들2는 나이에 맞지 않게 장남감에 대한 소구욕을 잘 절제해내는 편이다. 강요나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닌 타고난 천성이 그렇다(고 믿고싶다). 그의 장난감은 주로 택배로 온 종이 상자나 선물받 포장지, 리본, 제 효능을 다한 일회용기들이 대부분이다. 달력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폐기물로 업사이클링을 하는 친환경적 마인드에 타고난 감각까지 지녔다. 정형화된 사물이 아니니 창의성을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을 뿐더러 가정경제와 환경 보호 일조를 할 수 있으니 기특한 습관을 지녔음에 틀림없다.

  반면 소비의 화신 아들1은 어떤 경로로든 사욕을 채우는 스타일이라 당대 유행하는 대부분의 장난감을 섭렵하는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캐서린 켈로그라는 사람이 고잉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를 책으로 읽었다. 2년간 모은 쓰레기가 고작 손바닥만한 유리병 하나뿐이었다는 치열한 사투에 대해.

아마 그가 아들1의 방을 들여다봤다면 환경호르몬으로 그득한, 부질없는 폐기물일지 모를 덩어리의 집합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물건 본연의 쓰임과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실질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과시용이나 소장용은 지양해야한다고 여긴다.

가령 본인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레고를 시리즈별로 산다고 치자. 생각보다 작은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부피는 커지면서 조립 후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곧 어딘가에서 레고장을 들여와야 하므로 사욕에 의한 소비는 또다른 소비를 낳게된다. 생각지 않은 물건의 출현은 결국 내가 편히 쉴 공간을 줄이게 된다. 공간의 협소함과 얄팍해진 재정으로 씁쓸한 마음만 남는다. 더구나 한 번 장식장에 보관된 레고는 효능을 다한 사물처럼 박제된다. 완성품을 다시 꺼내어 부수고 새로 만드는 일은 웬간해서는 없으므로. 얼마의 시일이 지나면 또다른 종류를 구매하고 싶어지고 장식장의 빈 여백은 그렇게 촘촘히 메꿔진다. 그러다보면 고 넘치는 물건에 또다른 공간을 사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쯤되면 악순환도 이런 경우가 없지 싶다. 한 셋트를 만드는 그 몇 시간을 위해 함께 살 몇 십년 공간을 내어주고 지갑을 열어야한다.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만족하고, 절제하는 미덕을 발휘하긴 정녕 힘든걸까?검약하게 살기 위해 조금의 불편함을 참을 수 있는 마음이 쉬운걸까? 호사롭게 사는 이들을 위해 씁쓸한 마음을 견디는 것이 쉬운걸까? 아무래도 난 전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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