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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ie n Tahoe Jan 27. 2023

커리어에도 인터미션이 있나요

Prologue to living in Canada - 01

'자막에 의존하지 않고 영화를 보고 싶다'


영화 마케터로서의 커리어를 잠시 멈춰두기로 했다. 세계가 코시국에 적응하기 시작한 올해부터 캐나다 정부의 공식 외노자 초대장, 인비테이션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80%를 훌쩍 넘어섰다. 유명 커뮤니티의 가이드에 따라 어렵지 않게 비자 신청부터 신체검사, 최종 합격까지 딱 두 달이 걸렸다. 모든 과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만물 커뮤니티가 넘쳐나니 더 이상 처음이 두렵지 않은 세상이다.


지금껏 거의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돈에게 두 손 두 발 들었던 내 인생. 퇴사를 앞두고 "3년을 꽉 채운 경력"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대표님의) 회유였다. 하지만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고, 이번만큼은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겠다는 강한 확신에 따랐고 덕분에 퇴사 후 출국 전까지 근사한 4개월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은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와인 반 잔에 마지막 밤을 통째로 내어주고 출국 날을 맞이했다. 술과 대화로 밤을 지새우는 기적은 알쓰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야, 솔직히 다음 주말쯤 또 만날 것 같지 않아?" 내 맘 같지 않아 퍽퍽했던 서울살이에 가족과 다름없던 친구들과 헤어질 때 들은 말이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모두 덤덤했다. 낯설고 새로운 일 앞에서도 몸과 정신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걸 부쩍 느낀다. 충분히 떨리고 슬프고 기쁘던, 감정에 충실한 때도 다 지나가는 거구나, 왠지 섭섭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곱지 않아도 굳은살이 생긴 데는 그만큼 단단해지는 법이니까. 스물아홉에 시작하는 해외살이는 분명 많은 걸 내려놓는 일이고, 0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누군가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리셋 버튼이라고 해도, 나는 그냥 2부의 하이라이트를 위한 인터미션이라고 생각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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