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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손과장 Nov 19. 2020

어느날, 회사가 사라졌다

10년차 직장인의 코로나 휴직일기


서른다섯, 2020년의 나는 왠지 모르게 화려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 상상하곤 했었다. 서른다섯이면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업무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는 멋진 커리어 우먼, 혹은 워킹맘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해외 출장도 다니고, 잡지에 글도 기고하고, 수 백 명이 모여 있는 강당에서 강연도 하고, 집에서는 엄마와 아내 역할도 잘 수행해 내는 그런 슈퍼 우먼 말이다.


물론 그런 슈퍼 우먼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들고, 슈퍼 우먼이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나의 상상과 거리가 먼 2020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실제로 맞닥뜨린 2020년은 내 삶의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이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설상가상으로 위태위태하던 회사는 결국 반 폐업 상태로 기약 없는 휴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출근할 회사가 사라져버렸다. 회사를 가고 싶은데 갈 회사가 없다니, 내 인생에서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아 왔는데, 직장생활 10년차에 과장으로 승진까지 했는데, 왜 하필 우리 회사가, 왜 하필 내가 맡은 교육 업무가 이런 위기를 맞아야 하는 걸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놀러 한 번 가지 못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는데...정해진 대로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니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처음에는 ‘그래, 이참에 쉬면서 아이랑 시간 좀 보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지내보았다. 마침 딸아이도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에 못 가고 있어서 집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사람이 없는 시간에 한강공원에 가서 피크닉을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감만 높아져갔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만 안 하면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았는데, 막상 회사도 못 가고 코로나로 발이 묶이고 나니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정말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나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었구나. 회사만 아는 직장인이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며 입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직장생활 10년 만에 나도 어느새 회사밖에 모르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회사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회사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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