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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Apr 20. 2022

D+78 주재원과 회의

모닝 커피 vs. 모닝 차


회사에 도착하자 마다 컴퓨터를 켜고 차 포트에 정수기 물을 담고 버튼을 누른다. 옷을 정리하고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을 할 때쯤 물이 끓는다. 한국 마트에서 사 온 카누를 한 봉지 뜯어 보온병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은은한 커피 향을 느끼며 회사 메일을 하나씩 체크한다. 메일을 세 부류로 나눈다. 1) 나와 관련 없거나 대략 알고만 있으면 되는 참고형 메일, 2) 중요한 내용으로 다시 찾아볼 가능성이 있어 별도 표시가 필요한 메일, 3) 언제까지 무얼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숙제형 메일. 1)번 메일은 웬만하면 즉시 삭제, 2)번 메일은 즐겨찾기 설정, 3)번 메일은 잊지 않기 위해 데드라인을 책상 위 캘린더에 표시한다.


역시 나만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중국 직원들은 내가 끓인 물로 각자가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있다. 녹차, 우롱차, 보이차, 국화차 종류도 다양하다. 심심할 때 마시라고 회사 냉장고에 오렌지 주스, 캔 커피, 녹차 음료도 넣어놨지만 하루 종일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꺼내는 사람은 나뿐이 없다. 왜? 냉장고는 차갑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은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병이 날거라 생각하는 듯 하다. 나는 변함없이 커피를 마시고, 중국 직원들은 주구 창창 차만 마신다.


본사와 영상회의


코로나 시대 중국 입국을 위해서는 21일 내지는 28일간의 격리가 필요하다. 본사의 높으신 분들이 해외법인 시찰도 한번 하시고 해야 하는데 하늘 길이 막힌 지 이미 2년이다. 본사 임원의 중국 방문도 어렵고, 중국 주재원의 한국 출장도 어렵다. 본사와 소통하는 방법은 영상회의 뿐이 없다.


본사 임원이  세계 해외법인을 연결하여  말씀하시는 회의는 정말이지 장관이다. 베이징 법인은 중국 시황을 설명하고, 도교 법인을 일본 판매 실적 보고한다. 동남아, 미국, 호주, 멕시코, 터키 법인도 참석하여  마디  한다. 영상회의 화면에 예전 본사에서 알고 있던 얼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한국기업의 글로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잠깐 든다.


그러다가 본사 고위 임원이 우리법인에 대해 말을 할 때면 참여하고 있는 법인장, 부총경리들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칭찬일까, 아니면 질책일까. 오늘은 둘다 아닌 질문이다. 중국 코로나로 봉쇄됐다는데 상황이 어떤가요? 미리 철저히 준비하신 법인장은 청산유수로 답을 한다. 이 한 마디 답변을 위해 오늘 우리법인 주재원 8명은 두 시간을 기다렸다.


주재원 간 회의


40대 주재원들은 본사 같으면 팀장, 차장이지만 해외법인에서 임원이나 부장 이상의 중간 관리자이다. 그래서 주재원 간 회의 내용이 회사 경영을 위해 중요한 정책으로 연결되고 곧장 실행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류 운송 노선을 변경한다든지, 원료 구매 비중을 조정한다든지, 재고를 정리한다든지, 공정개선을 위한 새로운 설비 구매를 추진한다든지 말이다.  


이런 토론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서 간 오묘한 관계가 눈에 띈다. 싸게 사려는 구매부서와 좋은 원료를 희망하는 생산부서 간의 긴장관계,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재무와 판매 확대를 추구하는 판매부서간의 갈등관계, 생산중단 사태를 두고 설비부서와 생산부서는 설비관리가 문제니 조업이 문제니 공방을 벌인다. 입장이 다르니 관점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니 갈등이 있을 수뿐이 없다. 주중에 싸워도 주말에 골프장에서 만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작은 구멍에 공 넣기 게임을 하고는 했었는데 요새는 코로나도 그런 낙도 사라져 버렸다.


중국 직원과 회의


주재원과 중국 관리자 또는 직원이 회의를 할 때면 대부분 발표는 중국어로 하고 회의는 사람에 따라 중국어로 하기도 하고, 아니면 통역을 쓰기도 한다. 얼추 봐서 주재원 중 4분의 3은 통역 없이 바로 중국어로 회의를 한다. 중국말을 전혀 몰랐어도 대략 1년이 지나면 외계어 같던 중국어가 갑자기 언어로 들리기 시작하는 기적을 경험한다. 그러다 1년 반 내지는 2년 정도가 되면 어떡하든 중국어로 업무 지시, 회의를 할 수준이 된다. 이런 놀라운 발전에는 주재원의 피땀 어린 노력뿐만이 아니라 직원들의 놀라운 리스닝 수준도 한몫한다. 주재원은 어찌 됐든 업무를 해야 하니 손짓 발짓하며 표현을 하게 되어 있고, 직원들도 일을 해야 하나 키워드 하나로 전체를 파악하는 놀라운 신공을 보여준다.


참고로 중국어가 부족한 주재원에게 네이버 파파고는 오아시스와도 같다. 계약서를 붙여놔도 훌륭한 수준으로 번역되고, 사진을 찍어도 사진 내에 중국어가 그 위치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이 된다. 번역 품질은 대략 60-80% 수준. 정식적인 표현일 수도 번역이 더 잘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 파트너사와 회의


투자나 계약을 하기 위해 중국인 파트너사와 회의를 할 때에는 자신이 아무리 중국어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역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첫째 명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이고, 둘째 통역을 하는 동안 생각을 가다듬고 전략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협상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며 논의 주제보다는 언어 자체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반은 지고 들어가는 행위다. 자신이 중국어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도 의미 없다. 어차피 그래 봐야 우리는 외국인이다. 중요한 건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회의 몇 번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늦은 저녁 무심코 메일함을 열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여러 숙제 메일들이 와있다. 현지법인을 위해 의사결정해야 하는 현안들이 많지만 오늘도 역시 낮의 대부분의 시간은 회의와 본사 요청사항 대응으로 소비된다. 중국 직원은 나의 추가지시를 기다리다 오늘도 역시 정시 칼 퇴근이다. 모두가 회의 간소화와 업무 효율성 제고를 부르짖지만 글쌔 개선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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