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deric Lord Leighton - Flaming June)
Frederic Lord Leighton(1830-1896) - Flaming June
한낮 기온이 34도에 육박하는 8월, 나는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반바지, 반팔 티를 입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고 앞, 뒤가 뚫린 샌들을 신고 있어도 발바닥이 뜨거웠다. 파리는 땅덩이가 넓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해를 피하려면 가로수 밑 그늘을 찾아다녀야 했다. 잔뜩 지쳐서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서양 여성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들을 마주친 순간 나의 눈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헤맸다. 그녀들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브레이지어를 입지 않은 채로.
외국 영화를 보면 여배우들이 브레이지어 없이 얇은 티셔츠만 입고 등장할 때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속옷이 신체의 일부인 양 ‘당연히’ 브레이지어를 입는다. 익숙하지 않은 옷차림에 영화를 보면서도 낯 뜨거워했는데 그런 모습을 한 여성들을 실제로 마주치다니! 그녀들이 바로 눈앞까지 다 닿았을 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바닥만 쳐다보고 말았다. 브레이지어가 뭐라고.... 말 그대로 속에 입는 옷의 하나일 뿐인데 마치 그녀들이 깨벗은 것처럼 느껴졌다. 정작 그녀들은 신경도 안 쓰는 데 왜 보는 내가 허둥대는 거지? 내가 벗은 것도 아닌데?
그 후로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브레이지어를 입지 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파리의 그녀들이 부러웠다. 뭐 하나라도 더 걸치면 열기가 배가 되는 무더운 날 시원하게 브레이지어를 벗어제끼고 다닐 수 있는 자유. 그녀들에겐 일상인 그 모습이 나에겐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게 아쉬웠다.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표현에 인색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게 씁쓸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주로 ‘가리는’ 민족이다. 남보다 잘난 능력을 가리고, 남녀 성별을 가리고, 마음속 하고 싶은 말을 가리고, 옷으로 몸을 가리고.... 전통 옷인 한복은 속옷을 입고 속바지를 입고 그 위에 속치마를 입고 겉치마를 또 입은 후 상의로 저고리를 입는다. 거기에 버선까지 신어야 완성. 겉치마 길이는 어찌나 긴지 바닥에 질질 끌려서 바닥 청소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세월이 흘러 세계화에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이념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패션이 개성 표현의 일환이라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외치면서 엉덩이 바로 밑까지 내려오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나 금방이라도 봉제선이 터질 것처럼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은 남성을 보면 곁눈질을 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몇 번을 훑어본다. 꽤 생각이 열려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사회에 암묵적으로 깔려있는 단정함의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눈을 흘긴다. 자동차 기술은 발전했어도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말처럼 옷의 가짓수는 나날이 늘어가는데 옷을 입는 사람들의 인식은 채 열리지 못한 것이다.
더 자조적인 건 원단의 길이가 짧으면 짧을수록, 색상이 현란하면 현란할수록 잣대가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만약 몸에 딱 달라붙는 형광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본다면? 아마 눈으로는 형광색 민소매 티셔츠를 갈기갈기 찢고, 입으로는 노출증 환자라는 둥 관종이라는 둥 인격을 난도질할 것이다. 형광색 민소매 티셔츠가 뭐 그리 잘못이라고.... 그런 논리라면, 브레이지어를 입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파리의 그녀들은 모두 미친 사람들인 건가?
프레드릭 레이튼의 <Flaming June>이라는 작품 속 여성은 진한 주황색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있다. 화가가 무려 1800년대에 여성의 한쪽 가슴이 훤히 드러나도록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림 속 여성이 노출증이라거나 심하게는 매춘부를 그린 것으로 치부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옷을 겹쳐 입으며 온몸을 동동 동여맬 때 이 서양 화가가 살았던 사회에서는 몸을 몸으로 보고, 몸의 곡선과 굴곡을 아름다움으로 창조시킬 건강한 자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Flaming June>이 탄생한 시절에 우리 사회의 어떤 화가가 같은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면 풍기문란죄로 공개처형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여전히 드러내기보다 가리는 것에 익숙하다. 오늘도 위, 아래 속옷을 입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는다. 양말 위를 살짝 덮는 진회색 긴 청바지를 입고 목에 하얀색 코사지로 장식한 검은색 긴 팔의 목티를 입는다. 드러난 맨살이라곤 얼굴과 손뿐이다. (그나마도 코로나 창궐 이후엔 얼굴의 절반도 마스크로 가렸다.) 우리 사회도 그들이 가진 만큼 표현의 자유가 있었더라면 좀 더 창조적인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표현의 자유가 있었더라면 문화와 예술을 넘어 사회, 경제까지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무더운 여름날 브레이지어를 벗어버리고 싶을 때 벗어제낄 수 있는 그들의 자유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