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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Sep 13. 2021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통의 상사업에서 게임회사로 이직한 썰

*먼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글임을 밝히며, 개인별로 느끼는 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대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취직에 성공했다. 내가 취업에 성공한 회사는 잘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국내 굴지 대기업의 모태로서, 내가 다닐 때 창립 80주년을 맞이했었으니.

 첫 직장은 상사였는데 상사라는 회사가 애초에 워낙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정리해보자면 주로 전 세계를 누비면서 중개무역을 하는 한편, 각종 자원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어 발전사업을 운영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먹거리, 신사업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

 

 멕시코 교환학생 여름방학 때 중남미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해외영업'이라는 것에 꽂혀있었고 그중에서도 이 회사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입사 당시만 해도 나는 전 세계를 누비는 '상사맨'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는 프런트 오피스에서 영업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백오피스에서 그들을 위한 지원과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돕는 조직도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고, 나는 그렇게 영업 쪽이 아니라 재무팀에 배치를 받았다. 나의 의사와는 다소 무관하게 배치를 받았으나 막상 해보니 회계와 세무에 흥미를 느끼고 그대로 눌러앉아 8년 차 재무쟁이가 되었다. 



 취업 준비 시절 가장 원했던 회사에 입사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내 이상과 달리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고 회사 또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애해봤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던 모습이 있을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회사 생활을 한 지 6년,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이직을 결심한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게나 들어오고 싶어 했던 첫 회사였고, 좋은 사람들과 정도 많이 들어서 이래저래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6년간 사귄 애인과의 헤어짐을 고만해본다고 상상해보라 :) 


 이직이란 걸 처음 생각했을 때 나는 막연하게 판교에 있는 직장을 염두에 두었는데, 빠른 성장을 보이는 업계(특히 IT 쪽)이면서 보다 유연하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보장되는 조직을 원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직장은 겉보기에는 이런 면을 충분히 가진 듯했으나 재무조직은 그 조직장의 특성상 첫 회사와 크게 다를 게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내 개인의 발전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간이 아까웠다. 역시 진리의 부바부 (부서 by 부서). 그렇게 두 번째 회사와도 인연이 아니라고 느껴져, 두 번째 이직에 도전했고 나는 게임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재무라는 부서는 어느 회사에나 다 있다. 업종별로 회계처리 등에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 그래서 업종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이직할 회사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직을 생각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아마존에서 철을 파는 시대가 오면서 상사업은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옛날에 성공했던 업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그래서 IT 쪽을 원했던 것) 실제로 게임회사에 오니 업종의 변경 자체만으로도 20세기에서 21세기로 시간 여행을 한 것 같다. 뭐 물론 사람 사는 거 사실은 다 똑같아서 내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를 가지 않는 이상은 비슷한 점도 많을 것이다.


세 번째 회사에 출근한 지 이제 3개월 정도, 매우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물론, 이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 회사들과 비교하여 상대적 만족(절대적이라기보다는 비교에서 나오는 만족을 마음대로 정의해봄)을 느끼는 나는 왜 만족하는지 어떤 점이 다른지 적어보려고 한다. 



1. 워드 보고서 vs.100% 전자결재 

 어떤 업무를 맡았든지 혹은 어떤 형식이든지 직장인이라면 보고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보고서 제목 글씨 크기 20, 본문 14, 그리고 □ · / -으로 이어지는 머리 기호 등 어느 정도 회사에서 통용되는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이라 부르고 룰이라 읽는다)이 있기는 했지만 보고서는 정해진 답이 있지는 않다. 하다못해 바로 위의 차장님(조장)의 기준위 부장님(파트장)의 기준달랐다. 보고서를 써서 일단 차장님께 가면, 줄 간격부터 시작해서 (아니 워드 파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인쇄해서 보는데 어떻게 줄 간격이 다른 게 보이는지... 혹시 눈에 모눈종이 장착되어 있으신가요?) 차장님 차원에서 1차 첨삭이 이루어진다. 그 이후 차장님의 수정사항대로 고쳐서 부장님께 가면, 또 부장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첨삭을 당(?)한다. 아이쿠 말이 막 나오네! 이 보고서의 최종 소비자인 경영진을 더 빠르고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던가 혹은 중요성에 따라 넣거나 뺄 내용이 바뀌는 것이었다면 나도 배울 게 있고 다음 보고서를 작성할 때 참고를 할 텐데 배우는 게 없다고 느껴졌다. 물론 보기 좋고 경영진이 익숙한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바뀌는 게 없이 종이를 인쇄해서 몇 번의 수정을 거치는 게 시간도 아깝고 종이도 아까웠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데 그런 와리가리때문에 야근하게 되는 경우는 더 짜증이 나서 더더욱 이 과정을 통해 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 번째 회사에 와보니 워드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Zero다. 결재 올릴 일이 있으면 워드 파일을 굳이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100% 전자결재 시스템에 작성해 올리면 된다. 전 회사에서도 전자결재가 있었지만 어떤 보고에는 활용하고 어떤 보고에는 활용하지 않았다. 또 심지어 전자결재를 올리더라도 워드로 보고서를 인쇄해가서 내용을 별도로 설명드려야 했다. 지금은 뭔가 어떤 내용을 작성해서 공유할 때도 굳이 워드에 보고서를 쓰지 않고 단순히 메일로 작성하거나 사내 위키 페이지에 작성해서 히스토리를 보관, 관리한다. 


2. 사장-부사장-전무-상무-부장-차장-과장-대리-주임 vs. 님

 지금 다니는 게임회사는 모두가 서로서로를 '님'으로 부른다. 직책은 있어도 직급은 없다. 다니던 회사도 내가 퇴사하기 얼마 전에는 호칭을 통일해서 '~프로'로 부르기로 하면서 직급은 두 단계로 통합했다. 많은 대기업들이 호칭을 단일화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물론 호칭이 '님'이나 '프로'로 단일화되어있는 것이지 역량에 따라 별도의 등급이 있기에 모두가 다 손에 손잡고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적응이 된 차, 부장님들도 그렇고 나도 불과 몇 년 만에 입에 붙은 호칭을 바꾸는 게 낯설었다. 점차 적응이 되긴 했지만, 같은 주니어 레벨끼리는 서로 OO프로님이라고 불러도 마지막까지 차장님이나 부장님한테는 프로님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부장님이 다른 부서의 주니어가 '프로님, 안녕하세요'라고 보낸 메일을 보며 기분 나빠했던 장면이 뇌리에 아직도 박혀있다. 호칭을 바꾼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군대같이 경직된 조직문화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드는 한편, 승진 누락자들을 많이 만들려는 등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형식이 뭐가 중요하나 싶겠냐만은 확실히 어느 정도 분위기를 환기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여기 와서 모두 똑같이 님으로 부르니 서로 존중하는 느낌도 들고 나쁘지 않다. 아마 나의 첫 회사도 이미 프로화 된 ㅎ회사에 처음 입사한 후배들에게는 그런 회사일 것이라 믿는다. 단순히 직급만으로 목소리가 커지기보다는 실력이 큰 만큼 목소리도 크다면 좋을 것 같다.  



 둘을 비교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간단하게 적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프롤로그도 길어지고 항목별 글도 길어졌다. 앞으로 한 두 편은 더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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