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집안 사정이 그렇게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부자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원은 다닐 정도였으니.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던 08년도부터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다. 별생각 없이 갔던 사립대학교 학비는 꽤나 비싼 편이었고, 집에서는 첫 번째 학기만 등록금을 대주기로 했다. 1학년 2학기부터는 내가 벌어서 내든가 학자금 대출을 받든가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부해서 장학금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와중애 하나도 못함...과연 못한건가 안한건가)
당시에 돈 개념이 없던 나는 학자금 대출을 잠깐 받아도 '나중에 엄마랑 아빠가 갚아주겠지 혹은 뭐 얼마나 되겠어?'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교 다니는 내내 단 한 번도 과외를 쉰 적이 없었지만 용돈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모으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학자금 대출을 선택했다. 물론 만약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 학기 외에 모든 학기에 들어간 학비를 전부 대출받았으니, 대출금은 하루하루 쌓여가기만 했다. 나라에서는 학자금 외에 생활비도 일정 금액을 빌릴 수 있도록 해줬는데 그 금액까지 최대한도로 빌려 집에 가져다줬으니 그때 집안 사정은 정말 말 다했다. 나라에서는 고맙게도, 취직할 때까지는 상환을 독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 무섭게도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을 때부터 바로 원천징수로 원리금을 떼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대졸 신입사원의 월급이 얼마나 되겠나, 학자금 대출 원리금 떼이고 국민연금, 건강보험, 소득세, 고용보험 등등 각종 원천징수 항목을 떼이고 나니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몇 년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집안 사정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결국 살던 집에서 더 좁고 열악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고 나아질 기미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 가족들은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나에게 점점 더 기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소녀가장이 아닌 처녀가장이라고 칭했을까.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정말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2016년 가을, 상환이 완료됐다는 통지를 받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동시에 '2년 반 동안 나 그래도 꽤나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취업한 지 2년 반이나 지나서야 나는 학자금 대출 상환금액을 떼이지 않고 내가 일한 월급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이렇게 살기 싫다는,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사회생활을 0도 아니고 마이너스에서 시작했기에 그전까지는 '티끌 모아 티끌이라던데 모아서 뭐 하겠어, 어차피 안될 거야'라는 패배의식이 나를 집어삼켰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한편으로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이 괴로운 나의 인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이렇게 살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의 명언으로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태어날 때 가난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당신 잘못이다.
사실 진짜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빌 게이츠는 흙수저도 아니라 잘 사는 집에서 자라긴 했다. 하지만 내가 뭔가 시작하도록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 재테크라는 것을 해보자."
이 것이 내 흙수저 탈출기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열심히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 탈출기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