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비혼주의자(당시엔 비혼주의자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무튼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였던 나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종종 아래와 같이 말하곤 했다. 지금 보면 얼마나 철없는 소리인가 싶기는 하지만, 그때는 나름 진지했다.
"나중에 너희 결혼하고 남편이랑 부부 싸움하면 내가 재워줄 테니까 우리 집으로 와. 나는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을 거니까."
철없던 10대 소녀 시절, 한 15년쯤 지나 삼십 대 초반이 되면 혼자 나와 살 집도 있고 차도 있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물론, 일을 하는 커리어우먼은 되었지만 지금의 나와 당시 생각했던 삼십 대의 모습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40살이 되면 내가 어렸을 때 그렸던 모습에 가까워져 있을까? 그 모습에 가까워져 있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2016년, 학자금 대출 상환을 완료하고 재테크라는 것을 시작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재테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건 12년의 정규 과정은 물론 심지어 많은 돈을 주고 다녀야 하는 대학교에서도 알려준 적 없는 분야였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돈이나 부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고 돈 얘기를 하면 '돈, 돈, 돈'하는 물질만능주의자로 취급당하기 일쑤이다. 돈 얘기하는 것이 터부시 되는 분위기라 지금도 돈 얘기는 웬만하면 잘 꺼내지 않는다. 2년 뒤면 서른인데 이렇게 아는 게 없다니. 헛똑똑이로 28년을 살았네. 조기 금융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바로 내가 이렇게 너무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분야를 새롭게 공부하고자 할 때에는 아무래도 책이 제일 좋다. 무작정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져 부동산, 주식, 경매, 짠테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어보았다. ○○로 월 1,000만 원 벌기, 나는 ○○과 맞벌이한다, ○○으로 40살에 은퇴하기 등 정말 각종 책이 많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자산을 불리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던 것인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주는 월급만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깨달았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당장 내가 내일 교통사고를 당해서 출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생계는 누가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다른 게 공포영화가 아니라, 준비 안 된 내 인생 자체가 공포였다.
많은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절대 회사만 믿지 말고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만들어라'
였다. 파이프라인은 쉽게 말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나 통로,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물을 운반하는 것처럼 돈이 들어오는 경로를 뜻한다. 회사와 나는 단지 고용관계로 얽힌 것일 뿐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공무원보다는 못하겠지만 안정적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대기업 중 한 곳을 다녔음에도, 생각해보면 회사는 한순간에 나를 해고해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가만 돌아보니 평생 고용,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였다. 회사 입장에서도 예전과 같은 고용 보장이나 안정은 없고,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도 한 직장에만 평생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지고 있다.
회사에서 잘려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으려면 그리고 회사를 잘 다니려면 역설적으로 회사에서 독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회사에서 주는 월급밖에 없다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다른 방법이 없어, 참고 견디는 수밖에.'라고 생각하지만, 금액이 적더라도 월급 외의 파이프라인이나 모아놓은 자산이 있다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내가 여기 아니면 안 되는 줄 아나!'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다. 물론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도 당장 그만둘 수 있는 건 아니고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한다, 어느 수준까지는.그렇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져 조금 더 편해진다면 오히려 회사를 잘 다닐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할 확률이 높다. 돈을 벌고 모으는 건 참 어려운데, 그 모은 돈이 홀연히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집안 사정이 계속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오래된 비좁은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집은 더 이상 아늑하고 안전한 sweet home의 의미를 잃었고 가족들 간의 사이는 점점 틀어지기만 했다. 나 또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가족들에 대한 중압감 등으로 학창 시절에도 겪지 않았던 사춘기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찾아온 것만 같았다. 엄마나 아빠가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짜증을 내며 언성을 높이던 날들이 잦아져갔다. 정말 오만하고 부모님께 상처 줬던 무례했던 나날들이었다.
어찌 보면 회사 생활을 더 잘한다거나 은퇴 후를 준비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사실 다 겉만 번지르르한 말들이었고, 나는 이 불행한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그대로 살면 안 되었다. 돈을 모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