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내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신작을 내놓았다. 바로 미국 어느 명문대 영문학과의 최초 여성 학과장이 된 '김지윤 박사'(산드라 오)가 겪는 좌충우돌과 고군분투를 그린 <더 체어> 주인공 이름이 '지윤'이라는데 안 볼 수가 있나. 이지윤 아니고 김지윤이라 아쉬울 뿐.
1편에 30분씩 6편이라, 재미있어서인지 진짜 짧아서인지는 몰라도 금방 볼 수 있다. 짧게 끝난 게 아쉬웠던 걸 보니 재미있었던 걸로. <더 체어>는 180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인종차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세대갈등, 언론과 SNS, 입양가족의 어려움 등 정말 많은 것들을 다룬다. (온갖 PC란 PC는 다 나온다고 보면 됨)
동양인 여성이 학과장을, 그것도 영문학과 학과장이라니. 내 편견 탓인지 몰라도 산드라 오가 영문학을 강의하는 모습은 꽤나 낯설았다. 그러나 그래서 더 멋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훌륭한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윤'은 영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결혼하고 계약직 시간강사가 되기보다는 결혼을 포기하더라도 학교에 계속 남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딸(주희)을 입양했는데 입양기관에서 매칭해 준 딸은 멕시코인이다. 아이는 세상을 떠난 친엄마처럼 엄마가 떠나버릴까 봐 무섭고, '지윤'은 남편도 없는 자신이 너무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무섭다. 일이 많은 '지윤'을 대신해 외할아버지가 주희를 키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과 멕시코의 문화를 보여주는데 둘 다 너무 반가웠다. 민지's birthday party(돌잔치ㅋㅋ)에서는 심지어 고개 돌리고 소주 마시는 장면까지 나온다.
문학사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기긴 했지만 40년째 학교를 떠나지 않고 '고인 물'이 된 노교수들도 내가 학교 다닐 때 만난 몇몇 교수님들이 떠올라 흥미로웠다. 40년째 똑같은 강의를 하면서 '뭘 모르는 요즘 것들'이 수강신청을 안 해서 폐강 위기에 처할 정도인데도 기존 방식만을 고집하는 꼰대들을 보며 인생에서 만난 라떼를 외치던 많은 꼰대들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수는 학문적 연구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가르치는 것도 함께 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그들은 교수법(가르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하지 않겠나.
세대갈등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늘어난 수명으로 인해 기존의 윗사람들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자리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싶다. 물론 다들 인문학보다는 코딩에 관심 있는 것도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음.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선배들은 대리 정도는 정말 큰 하자가 없으면 다들 어렵지 않게 진급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리되기도 힘들어졌다. 아직도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체된다. 비단 어느 사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에 뉴스 보니 국회도 고령화는 마찬가지. 50대 이상이 70%가량인 조직에서 청년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미친 짓처럼 느껴진다.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졌다.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긴 하지만 웃긴 장면들도 많이 나와 부담 없이 볼 수 있는데, 아래 대사가 인상 깊었다. 지윤이 수강생 5명이라 학교에서 내쫓길 위기에 놓인 엘리엇(고령의 백인 남성, 40년 전 학과장, 종신)에게 인기강사인 야즈(젊은 흑인 여성, 계약직, 종신 아님)는 트위터 팔로어도 8,000명이라 얘기하니 엘리엇 왈"예수는 제자가 12명이었는데 그럼 예수도 루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