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아, 누나 10년이 다 되도록 수필을 써오면서 글쎄 수필이 화해와 이해의 문학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하는구나.
‘아아, 그래서 그랬구나.
나의 경험을 진솔하게 쓰는 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에 의미를 입히는 글.
종국에는 어떤 대상과의 이해 혹은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글.
그리하여 착하지 않을 수 없는 글.’
안 착한 사람이 착한 글을 쓰려니 버벅거릴 수밖에.
‘이래서 내가 소설을 꿈꿨던 거였네.’
말로만 듣던 첫 문장, 첫 문단, 플롯, 인물, 배경, 사건, 시점, 개연성….
가차 없이 디테일해야 하는 작업이더라고.
소설의 독자로 사는 것과 필자가 되는 것 사이에는 또 커다란 강이 있을 거야.
누나 과연 그 강을 건널 수 있을지….
우리 삐약이 안마사들이 요즘 부정 평가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나 쓴소리를 각오해야 할진대.
랜덤으로 첫 문장을 주셨어.
첫 문단을 써보는 과제인데, “한 시간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주의가 무색하도록 하루 종일 머리만 복잡해.
내 이야기인데, 나 아닌 척하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를 곱씹으면서 ‘서술자’를 여자로 할까 남자로 할까, 어른 or 아이 갈피가 안 잡혀.
도대체 나도 나를 모르겠단 말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무래도 ‘맹인’이어야 리얼리티가 살겠지?
주인공에게는 꼭 콤플렉스를 주라고 했는데, 이보다 극적인 결핍이 또 있을까?
누군가 나보고 갈등 부자라서 글감이 많다고 했었는데.
흰 지팡이를 든 여자 혹은 남자.
내가 가장 잘 아는 인물로부터 출발해야 어떻게 엄두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문학 세계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중학생 언니야들과 설명문 공부하면서 정의, 예시, 비교·대조, 분석 등은 건조하지만 어디까지나 팩트여야 한다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인과가 중요하다고.
강산이도 알겠지만 누나 스타일 아니잖아.
t 아닌 극 f인간이라서 문학 장르에 매력을 느끼는 건데….
플롯 짜는 모양은 완전 설계도 느낌.
촘촘하고 논리적이며 독자 그러니까 과녁, 저자가 쏘고 싶은 질문 혹은 인식인 활의 색깔이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하는 거야.
오오오, 어려워!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어휘레봤자 어쩔 수 없이 장애인, 차별, 편견, 통합의 가능성, 사회 분위기, 인성, 주는 자와 받는 자, 권력, 신체 혹은 심리적 재활, 위로, 공감 뭐 그런 것뿐인데.
어떤 장면을 상상하는 거야.
맹인들 모여 공부하는 교실에서 눈감은 자들이 나누는 대화.
좀 재미있을 때가 있기는 하니까.
우선은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버려야겠지?
‘근자감’ 답은 아니더라.
이 가면 속에 억눌린 나의 화산 같은 분노가 부디 생애 첫 소설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되어 주길.
그리하여 뭐라도 쓸 수 있기를….
그나저나 강산아 누나 내일 유주 등교시킬 뻔.
자정이 되도록 『조립식 가족』인지 뭔지에 푹 빠져 잘 생각도 안 하는 녀석을 다그쳐서 온 집안에 불을 껐어요.
“엄마 내일 출근할 때 나깨워줘.
오전에 안무 연습해서 동영상 찍고, 그거 보내야 하니까.
내가 교회 연습은 못 간다고 했는데, 착한 리더 언니가 괜찮다고 그냥 안무만 외워서 보내달래.”
‘헉, 아아아아! 수능!’
“엄마네는 안 쉬지?”
“그래, 넌 좋겠다.
유주도 몇 년 안 남았어.
지금이야 남의 수능이니 고맙지.
그래도 우리 유주는 지, 덕, 체 중에 두 개는 가지고 있잖아. 지만 좀….”
“몇 번을 말해.”
“야 그거 대단한 거야. 세 개 중에 한 개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덕 밖에 없는 거 같아. 싸움은 잘 안 하거든.”
“엄마, 우리 교회 리더 언니 얼굴에 완전 춤이라고 딱 써 있어.
진짜 춤 잘 춘다.”
“너도 잘 추잖아.
근데, 얼굴에 춤, 관상 보는 거야?”
“아냐. 나는 완전 평범한 얼굴.
친구들이 내 얼굴에 노래랑 춤이 없어서 깜짝 놀랐대.
우리 학교 애들은 다 관상 봐.”
“헐. 관상이고 뭐고 어여 주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