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공x리라영 Oct 30. 2023

난 하자가 있는 부품이 아니니까

학원을 그만둔 이유 


 4평 남짓한 학원의 한 교실에서 이 회사를 만든 대표와 지점 원장이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있고, 그 옆 교실에서는 이 학원에서 이제 2년 차가 된 내가 본사 경영인사 팀장과 마주 보고 있었다. 팀장은 나한테 왜 그만두냐고 물으면서 옆 방에서 원장은 잘리고 있다고 했다. 너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놀랐다. 설마 바로 잘릴까. 한두 달 더 일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이미 새 원장을 구했다며 내일부터 일주일간 인수인계 하고 지금 원장은 그만둘 거라고 했다. 본사는 내가 그만두는 제일 큰 이유가 원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본사가 생각하기에도 내 시간표는 너무 말도 안 됐고, 불공평했기 때문이다. 뭐, 맞는 말이기도 하다. 좀 더 일찍 이 상황이 벌어졌으면, 너무 감격한 나머지, 이 회사에 뼈를 묻는다고 할 뻔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경영인사 팀장은 새 원장이 왔을 때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내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강사팀의 팀장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내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하자, 2년이면 오래 일했다면서 내가 원한다면 다른 지점의 원장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월급 인상도 말했지만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자유를 달라’였다.


 도비 이즈 프리. 이 유명한 밈처럼 난 정말 ‘자유’를 원한다고 했다. 진짜다. 머릿속에 그것밖에 없었다. “제가 원하는 건…. 자유입니다.”라고 했다. '거기에 있는다는 것', 그 자체로 지쳤기 때문에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2년 전에는 여기에 배울 것이 많아서 들어왔다.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반도 있고, 한국어로 영어 문법을 가르치는 반도 있고 고등학생 수준의 반도 있다. 굉장히 다양했다. 또, 3개월마다 강사들끼리 시범강의도 시키고 피드백을 주고받게 하며, 한국말 전혀 못하는 외국인 선생님들도 있고, (모두가 싫어하는) 학부모 상담도 있고, 마지막으로 4대 보험이 지원되는 정규직 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원래 학원 업계는 프리랜서로 계약을 많이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더 이상 배울 것은 없고, 나 자신은 매일 갈리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톱니바퀴 속에 있는 작은 하나의 톱니바퀴인데 모서리가 다 마모돼서 곧 쓸모 없어질 존재로 예약된 것 같았다. 그게 내 미래 같았다. 만약에 이 자리에서 내가 나가면 본사는 또 다른 작은 톱니바퀴로 빈자리를 채우면 되는데, 새로운 톱니바퀴는 아무래도 처음에는 아귀가 맞지 않으니까. 맞추는데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니까 그냥 이미 갈릴 때로 갈린 톱니바퀴에 기름칠만 하면서 운영하려고 나를 꼬드기는 느낌이 들었다.


 2년 전 회사가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제공해 줄 수 있던 발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사실 2년이면 길지. 다들 1년 반쯤에 그만뒀다. 내가 2년 차가 됐을 때는, 내 위에 있는 사람이 원장 한 명이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잘렸으니, 내가 최고 연차였다. 더 이상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여기에 왜 있나. 하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는 게 맞았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거기에 있던 시간들이 너무 힘들고 고단했어서, 지금 ‘내 일’을 하겠다고 일을 벌이고 있는 중인데 어학원을 그만뒀다는 게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나는 하자 있는 인간이 아니니까. 부품도 아니고, 하자 있는 부품도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