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나온 대사 한 줄.
배우 변요한이 연기한 "김희성"이 한 말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난 이리 무용한 것들을 좋아한다오. 봄, 꽃, 달, 바람 같은"이라고 했던 것 같다. 드라마를 보던 당시에 그 대사가 참 좋았었다. 이리저리 계산하지 않고 미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예술가다운 그의 대사가 참 좋았다.
어린 시절, 사람은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쓸모없는 사람 중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더랬다. 그렇게 난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나름 부단하게 살았다. 누구나 그렇듯 그 과정은 참 고단했다. 고등학교에 이르러서는 크게 쓸모 있기는커녕 평범하게라도 살아남으려면 아등바등 애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직장에 자리 잡고서야 한숨을 쉬었던 것 같다. 한 사회인으로서 쓸모 있게 독립했다는 안도감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러다 결혼하고 큰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그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쓸모 있음"은 어디에 해당한다는 말인가? 한 사회의 일원으로 경제적, 공동체적 책임 일부분을 담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게 보통의 상식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독일 나치는 장애인을 처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고.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장애인을 그렇게 쓸모없다 여겨 일찍이 산골짝에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애인을 먹여 살릴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난 큰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키우기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 정신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장애아인 것을 인식했을 때 나는 공황, 우울, 체념, 절망 같은 부정적 감정의 끝까지 치달았었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여러 사회적 장애물은 나를 날카롭고 도전적으로 만들었으며, 사춘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장대비 속에서 울부짖는 아이를 끌어안고는 같이 통곡하면서 한때 아이 탓을 했던 나를 반성했고, 안정기에 접어들어 어린아이의 맘으로 세상을 보는 어른아이가 된 큰 아이의 엉뚱한 한 마디에 집안 가득 웃음 짓는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이 아이로 인해 충만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물질적인 욕구로부터 어느 정도 놓여났고, 작은 아이에 대한 보통의 욕심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또 하나. 그 힘든 여정 속에 함께 해준 남편이 아니었으면 난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남편을 신뢰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세상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런 사회적 경제적 활동도 못하는 우리 큰 아이가 쓸모없게 보일지라도, 내게는 세상 가장 순수한 웃음을 안겨주는 사랑 그 자체인 존재인 것이다. 화원에서 키워져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화초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 산야에 아무렇게나 피고 지는 야생화와 잡목들도 다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김희성의 대사는 "세상 무용한 것을 좋아한다."라기보다 "세상 무용하다 일컬어지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라고 함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김희성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리라 혼자 짐작하는 바다.
어쩌면 사람 사는 데에 진정 쓸모 있는 것들은 그런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찾고 예술을 찾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