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커서 아마도 너 같은 사람이 되겠지
나는 어렸을 때, 별명이 참 많았다.
삼 남매 중에 첫째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관심을 많이 받았던 배경에 두루두루 사람들과 어울리던 성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이름이 특별했다. 내 이름은 형용사다. 그것도 색을 나타내는 형용사. 이는 어떤 명사 앞에 내 이름을 붙이더라도 쉽게 말이 되고, 명사에 특징이 더해지고, 부르기도 쉬워진다는 뜻이다.
무튼 나는 그렇게 모호하고도 다양한 별명들로 어린 시절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내 아이에게 (속으로만) 붙여줬던 별명이 있다.
마더 테레사 다른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감히 자주 불러 보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속 답답함과 속상함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해서 정신승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생활 동화를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들이 참 많이 나와 있다.
미끄럼틀을 탈 때는 차례차례로 타요.
맛있는 간식은 나눠 먹어요.
재미있는 장난감은 친구와 함께 가지고 놀아요.
내 아이는 늘 마지막이었다.
미끄럼틀을 탈 때에도, 맛있는 간식을 고를 때에도, 재미있는 장난감을 차지할 때에도 늘 마지막이었다.
설령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 조차도 결국은 늘 마지막이었다.
이미 가진 것조차도 더 원하는 아이가 있으면 바꿔주거나 내어 주었다.
(내) 세상의 중심에서 키우고 있는 아이인데, 아이는 자꾸만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기를 자처했다.
속이 터지는 에피소드들을 줄줄이 엮어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이 없는 걸까. 모자란 걸까. 바보인가.
엄마는 아이의 특징을 장점이 아니라 단점으로 가정하고, 걱정이 많아졌다.
그래도 괜찮다고. 아이의 마음이 괜찮은 거면 내 마음도 괜찮아야 한다고.
나의 육아는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래고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속 다짐의 연속이었다.
아이도 커가고, 나도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살았더랬다.
그러다가 한동안 유행하던 MBTI 검사를 아이에게 시켜봤다가, 나는 그만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이의 MBTI는 전 세계 1% 미만이라는 INFJ
Advocate(선의의 옹호자)라고 한다.
선의의 옹호자(INFJ)는 매우 희귀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이들은 이상주의적이고 원칙주의적인 성격으로, 삶에 순응하는 대신 삶에 맞서 변화를 만들어 내고자 합니다. 이들에게 성공이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세상에서 선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선의의 옹호자는 다른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에 속한 유명인으로는 마더 테레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넬슨 만델라 등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선의로 가득 찬 삶의 의미가 무척 중요할 수도 있다.
아니, 나에게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게 '내 아이'의 일이라면?
게다가 그 아이가 어려서부터 욕심 없고, 주변에 자기 꺼 퍼 주고 오던 아이라면?
여기에 쿨하기 쉬운 엄마는 별로 없을 거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나는 아닙니다. 아니에요...
나는 그냥 세속적으로 아이 인생의 행복과 성공을 비는 평범한 엄마이다.
아이가 아직 어린 관계로 다소 쿨한 척을 하며 살고 있지만, 스스로 속을 들여다보면 아이가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누리길 바라는 욕심쟁이 엄마이다.
그런 나에게서 왜 네가 나왔을까.
용의주도한 전략가(INTJ) 에게서 태어난 마더 테레사라니...
정작 너는 너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데, 앞서가는 엄마만 생각이 많아서 큰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이 많은 용의주도한 전략가는
인터넷 세상에서 아이의 미래를 기획하고, 고민하다가, 덮어두기를 반복한다.
전략가 따위가 선의의 옹호자를 어찌 이기겠냐고 생각하며.
MBTI
너는 나에게 너무 큰 숙제를 남겨줬어
나는 너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니, 나는 너를 어떻게 방해하지 않아야 할까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너는 커서 아마도 너 같은 사람이 되겠지
[ 표지 사진 출처 ] https://chopra.com/articles/6-steps-to-mindful-pr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