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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로운별 Mar 04. 2022

정의를 위해 악마가 되다

tvN 드라마 《악마판사》

※ 본 내용은 드라마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 tvN 《악마판사》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바이러스가 마침내 잡히고 대한민국 전체를 살펴보니 혼돈으로 가득 차있었다.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광화문에 집결하기도 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통의 목소리를 부르짖고 있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민들의 불만으로 가득 찬 디스토피아(Dystopia) 그 자체였다.


조연 배우이자 정치 유튜버 출신으로 대통령이 돼 집권한 허중세는 이런 국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그 내용은 강력한 대한민국으로 만드는데 강력한 법질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모든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 시범 재판'을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공약이었던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국민 시범 재판은 과연 누가 맡을 것인가. 이 막중한 책임은 죄인에게 가차 없기로 유명한 강요한 판사가 시범재판부 재판장으로 부임하며 짊어지게 됐다. 대통령의 담화에 별 관심 없던 국민들의 이목은 국민 시범 재판에 몰렸다.


국민 시범 재판의 첫 사건은 유독성 폐수를 하천에 방류해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친 'JU케미컬 오염수 방류 사건'이었고, 피고인은 인맥이 막강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JU케미컬 회장 주일도였다.


출처 : tvN 《악마판사》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마침내 국민 시범 재판 첫날, 모든 재판 과정은 '정의의 여신 디케' 앱을 통해 생방송되고, 국민들은 버튼을 통해 피고인에 대한 유죄 무죄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사법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던 국민 대다수가 재판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검사가 유독성 오염수를 하천에 방류해 인근 마을 주민이 사망했던 사실과 심각한 질환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주민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국민들의 표를 유죄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변호인은 논리를 통해 JU케미컬이 그나마 노력했던 점을 언급하며 이 책임을 지자체에 넘겼고, 이에 수긍한 국민들의 의견은 서서히 무죄 쪽으로 다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로의 말이 모두 이해가 되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던 그때, 강요한 판사는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마침내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과연 강요한 판사는 주일도 회장에게 어떤 형벌을 내렸을까?


출처 : tvN 《악마판사》 공식 홈페이지 현장 포토


드라마 《악마판사》, 보기 전부터 기대와 흥미로 가득했던 작품이었다. SBS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등과 같이 정의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쾌감을 제공하는 법정물을 즐겼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판례들을 보면 많은 범죄자들이 처벌을 받지만, 그들의 악행과 형량을 동시에 놓고 볼 때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피해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고작 저 정도?'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마판사》에서는 달랐다. 기업 총수에게 200년이 넘는 금고형을 선고하고, 살인자에게는 전기가 흐르는 의자에 앉히는 형벌을 내렸다. 피해자의 인권도 고려해야 하는 현 세상과는 명확히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어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악마판사》만의 차별점이 있었는데, 바로 미디어를 통한 재판이 도입됐다는 점이다. 모든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사건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피고인에 대한 낙인 효과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훌륭해 보인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득 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여론은 분명 확산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하지만 그만큼 휩쓸리기 쉽고, 잘못된 정보가 더해져 선동 효과를 가져온다면 이는 악용되기 쉽다. 드라마 속 장면에서도 당연히 피고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는데, 변호사의 논리 정연한 변호 이후 무죄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증을 통해 인과관계를 따져 형벌을 결정하는 재판은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인과관계없이 어느 한 여론에 휩쓸려 오판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떠안을 것인가? 늘 중우정치(衆愚政治)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피고에게 태형을 선고한 사건이 있었는데, 미디어를 통해 형 집행 과정을 그대로 지켜본 어린아이들은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처럼 친구를 아무렇지 않게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 미디어의 가장 큰 폐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많은 방송들이 연령 고지를 통해 시청 지도가 이뤄지도록 장치는 마련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당장 어릴 때 15세 관람가였던 개그콘서트를 보고 모든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영유아들도 유튜브를 보고, 어린 친구들은 검색할 때 포털사이트 대신 유튜브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은 상당해졌다. 향후 콘텐츠를 제작할지도 모르기에 이 점을 염두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책임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입니다



피고인에 대한 연민 없이 통쾌하게 형벌을 선고하는 강요한 판사는 과연 '악마'였을까? 그렇다고 범죄자의 인권을 고려하며 형벌을 선고하는 판사를 '천사'라고 하기에도 그렇다.


분명 법정 드라마를 봤는데 미디어에 대한 고찰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사실 기대한 것에 비해 전개가 그렇게 흥미진진한 것은 아니었으나,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는 일품이다.


어느 것 하나 통쾌한 것 없는 답답한 세상이다. 어쩌면 진짜 디스토피아 일지 모르는 우리나라에서 일말의 쾌감을 느끼고 싶다면 《악마판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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