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 이후의 못다한 이야기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고 다른 챕터로 넘어갈 때 고른 숨을 쉴 필요가 있다.
3년간 정말 애지중지 키워온 트루모먼트가 그랬다. 코로나 한가운데 오픈했던 내 눈물과 땀 그리고 시절을 쏟아부은 공간을 여러 상황에 떠밀리듯 다른 이에게 넘겨야 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내가 사랑으로 가꾸어온 공간을 알아보고 선뜻 양도받겠다는 이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괜찮겠거니 했었다.
10월부터 시작된 주말부부가 낳은 비극이자 희극.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차마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역량 부족이고 상황의 한계였다. 아이 둘을 보면서 12월 성수기를 무난하게 보낸다는 건 사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간에 대한 명성을 한 순간에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래도 조금만 더.. 다른 방법이 있진 않을까 싶어 끝까지 버텼던 것 같다.
주 타깃층인 미혼의 이 삽 십 대 여성들이라 하루가 거의 마감하는 시간에 예약문의 연락이 몰아치고는 하는데
그 시간은 하필 내가 아이들과 자석보다도 더 강력하게 붙어있을 시간이라 전화받기도 쉽지가 않았다. 신랑이라도 있으면 잠시 맡기고 숨을 고르고 방으로 들어가 친절하게 CS를 했을 텐데 그렇게 몇 번 예약 문의를 놓치고 예약이 성사될 기회가 어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그제야 떠나보낼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더라지.
" 이제는 그만해야 될 것 같아요"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걸려온 3년간 함께해 온 청소매니저님과의 통화를 통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그 누구보다 우리 공간을 잘 이해하고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공간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해 주셨던 분의 결단. 어찌해야 할지 기도하고 있던 터라 매니저님의 전화 한 통화가 쓰라린 신의 응답처럼 느껴졌다.
12월 전에는 매장을 양도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당장 양도관련해 카페에 글 좀 올리고 해야겠다 싶어 10월의 마지막날 혼자 사무실에 앉아 기도를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기도 부탁을 했는데 갑자기 떠오른 한 사람.
때 마침 그 주 목요일에 지인 소개로 공간 관련 컨설팅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 미팅을 하기로 한 ㅈㅇ 씨는 나를 만나기 전에 미리 또 트루모먼트를 다녀갔다. 공간을 오픈하고 싶어 하는 예비창업자라고 이야기를 들었고 상당히 관심도 많은 것 같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양도받을 생각이 있는지 양도 가격을 말해주고 의사를 물었다. 브랜딩이 이미 잘 되어있는터라 사실 주변 지인들도 상당수 트루모먼트 양수 의사를 보였지만 이끄시는대로 하고 싶더라.
20대 후반의 미모의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는 양수 의사를 밝혔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좋은 건물주를 만나 월세도 1년간 동결했고 컨설팅을 진행하기로 했던 날은 파티룸 사업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가계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큰 산으로 보이던 일이 한순간에 풀려버리다니.
11월 한 달은 공중이 붕 뜬 기분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던 것 같다. 내 첫 사업장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도 잠시 양수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더라. 네이버 플레이스, 스페이스클라우드, 쉐어잇, 여기 어때 등 지금껏 쌓아놓은 플랫폼들도 순차적으로 모두 넘겼다. 12월 극성수기를 앞두고 홍대파티룸 키워드로 2위에 랭킹 되면서 12월 예약이 몰아치고 있었다.
공간대여사업의 격전지 홍대 상수동에서의 지난 3년첫 사업장을 물리적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정서적으로는 마무리를 짓지 못했었나 보다.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난다. 왜 계속 골골대고 아팠는지. 기침을 왜 달고 사는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내 마음을 꺼내놓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대했는데 괜찮냐"라는 질문에 아주 쿨하게 이미 끝난 시절인연인 듯 답했다.
왜 그토록 마음이 헛헛하고 구멍이 난 것 같았는지 이제 좀 알겠다. 무어든 나는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은 사람이다. 쿨한 척 한건 어쩌면 정말 멋있어 보이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굳이 왜 그런 마음이었는지 우습기도 하지만 수많은 인연이 지나가고 얼굴을 마주한 적 없지만 예쁜 마음의 고객들과 대화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내게 주어진 엄마라는 역할이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건 아이들에게로 족하다. 내 이름 석자로 작은 돈이라도 버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무수한 다양한 고객들과의 소통. 얼굴 한번 본 적 없어도 전화로 상담채팅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는 대화를 걸어오는 말투에서부터 이 사람이 예약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도 구별이 가더라.
극 E성향인 내게 있어 어쩌면 숨이 트이는 창구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A부터 Z까지 내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기도 했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의 생일파티, 둘째 백일 돌까지도 트루모먼트에서 치렀다. 내 손으로 백일상 돌상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백일상, 돌상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100일이 갓 지난 둘째를 안고 부은 몸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러 갔던 2022년의 겨울은 또 어떻고.
그런 공간이 폐업이 아니라 양수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20대 예쁜 사장님이 본인의 스타일대로 얼마나 잘 또 운영을 해 나가는지.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다. 은혜.
이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보듬고 있다. 물리적으로 떠나보냈으니 이제 정서적으로도 놓아주어야 한다.
사람도 이별을 하면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은 첫 사업장은 오죽할까.
이렇게 한 번은 마음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이제야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래. 박수칠때 엑시트’
지난 3년의 아릿한 기억으로 가득한 내 첫 오프라인 사업장(2020년 12월~ 2023년 12월) 이제 정말 안녕.
세상의 모든 자영업 사장님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어려운 시기에 공간대여업을 하시는 사장님들과 예비 창업자분들
건승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
공간대여 관련 또 다른 이야기는?
https://blog.naver.com/jinshil1004/223282397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