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말이지 나에대해 잘 모르겠다.
주변에 챙겨야 할 것들
신경 써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은데
정작 내 자신은 제대로 아껴주거나 돌봐주지 못할때가 많은것 같다.
미취학 아이 둘을 키우는 40대의 어느 평범한 여성이 된 걸까.
음악을 정말 좋아했는데.
여유롭게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는게
한편으로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기분이 막 다운되거나 슬픈 것은 아니다.
오늘 보내는 나의 하루가 쌓여서 나의 미래를 만드는 것일텐데.
2019년 첫 아이를 품에 안은 그 순간 부터
나의 일상이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는데
그 한 영혼, 한 영혼이 자라가는 모습을 볼때면
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다.
그 기분은 아주 흔해빠진 상투적인 말로 굳이 표현하자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내가 그립다.
하이힐을 신고 펜슬 스커트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제안서를 쓰고 클라이언트과 통화를 하고
기자를 만나고 기사를 성사시키고 그렇게 몰입해서 일을 했을 시절이
그렇게 짧게 지나갈 줄은 정말 몰랐지.
그래서 지금 현재에 더더 충실하고 만족하려 한다.
오늘의 내가 최고로 젊으니까.
아마도 내일의 나는 또 오늘의 나를 그리워 하게 될테니 말이다.
약 1년전부터 아프다고 했었고 모든 가족들도 심지어 병원 의사마저도 젊으니 암일거라고는 생각을 못한게
암을 더 키운 꼴이 되어버린 ㅠㅠ
두살터울 남매를 키우면서 아주 가끔씩 동생과의 어린시절이 오버랩 된다.
스무살 이전까지의 우리는 무수한 엄마밥을 같이 먹고 같이 교회에가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
같은 집에서 잠을 잤다.
그런 동생의 생명이 위험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한 몇주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흘러나왔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CT결과 전이는 없었고 생각보다 빨리 수술 날짜가 잡혀 엊그제 오전8시에 들어가 오후 1시까지 수술대에 오른것. 생각보다 암덩이는 컸고 바로 그 종양을 제거하는데 무릎 연골을 다 드리내고 인공 연골을 넣는 수술을 진행한것.
하 나도 제왕절개로 두아이를 낳았지만.. 진짜 쉽지 않은일인데
왜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실제 내 동생은 그렇게 뼈를 깎았다. 생각만해도 마음이 저릿하고 아프다.
우린 그냥 솔직히 현실남매 그 자체였는데. 항상 공기처럼 함께 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한 그 가능성이 <가족>이 얼마나 단단한 무게이며 소중한 존재인가 더 깊이 다가왔다.
동생은 외유내강의 올케와 더불어 지금의 시련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수술 3일 뒤부터는 다리에 부목을 대고 천천히 휠체어도 탈 수 있다고 하고 일주일 뒤에는 목발 짚는 연습을 한단다. 3~4개월 정도는 지나야 목발 없이 걸을 수 있다고.
곧 한달뒤면 항암시작인데 면역력이 떨어지면 수술 부위 감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기도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동생을 위해 기도한다.
" 주님 제발 동생을 살려주세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정말 딱 2가지 기도만 나오더라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살려주세요"
세상의 모든 환우들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시린 가슴을 살아가는지
내가 그 가족이 되어보니 알겠더라.
동생네의 필요를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누나이고 싶다.
진짜 조카 둘까지 애 넷도 다 케어 가능하다.
어디서 그런 투지가 생기는지,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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