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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Jul 02. 2024

29화. 한 노인의 가르침, 각성 2

노인은 다소 미지근해져 가는 맥주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듯이 마셨다.

"그런데, 나는 두 분께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소"

"예? 어떤 이야기인가요?"


쟈밀라와 수다쓰에겐 왠지 모르게 압도하는 듯한 노인의 외모, 그리고 인자하면서도 깊은 눈빛에 자연스레 노인의 입모양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먼저 두 분께 질문하나 합시다. 두 분이 해외에서 힘들게 일하고 벌어놓은 돈은 누구의 것입니까?"


상당히 엉뚱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잠시 고민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챠밀라였다.


"저희 힘으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고 이곳에 오기까지 상당한 돈을 들여왔으니까, 당연히 제가 번 돈은 저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챠밀라의 말을 듣고 있던 수다쓰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동조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인의 깊은 눈빛은 챠밀라와 수다쓰를 순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두 분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방금 저는 챠밀라이구요, 옆에 친구는 수다쓰입니다."

"그래요. 그럼 수다쓰씨도 같은 생각입니까?"


특별히 반박할 것이 없었던 챠밀라의 답변이었기에 수다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도 제가 노력해서 이곳까지 왔고, 이곳에서 저의 땀과 노력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제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그 들 둘의 대답을 경청했다. 노인은 닭날개처럼 보이는 치킨 하나를 집어 들고 힘 있게 뜯었다. 잠시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다 기분 좋게 한 마디를 더했다.


"두 분의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한국하고 조금 다른 게 있어요. 혹시 한국의 IMF 경제위기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얼핏 들어봤어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본 것 같아요."

"그때 외신언론들이 상당히 주목했던 한국인의 집단행동이 뭔지 알까요?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 들어봤나요?"

"아,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집안 곳곳의 금은 물론이고 아이들 돌반지까지 가지고서 줄지어 서있던 모습이었어요. 그때 한국사람들은 정말 대단했고 감동적이었어요"


노인은 잠시 맥주 한 모금을 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린 참, 독특한 민족입니다. 나라 자체가 자원도 없고 인프라도 없고 있는 거라면 이 몸하나, 사람밖에 없는 나라이지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었던 대한민국이었다.

믿는 건 대를 잇던 가난을 끊어내기 위한 자식들 교육뿐


"내가 중동에 있을 땐 나라가 IMF보다 더 가난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중동 오일쇼크가 일어났지. 전 세계가 출렁일 땐데, 약소국이었던 우리나라는 경제가 곧 엎어질 판이었어요. 그때 우리가 보낸 외화송금이 그 위기를 버텨낸 대들보 역할을 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 나는 기분이 아주 묘했었지요. 오죽하면 정부나 국민들 시선이 우리를 '산업의 역군'이라고 칭송하면서 여하간 사회적 분위기가 왠지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그런 환경이었소. 우리가 벌어 놓은 돈은 내 돈이 맞지만, 단순히 내가 번 돈 이상으로 나라에선 생각을 해주었고,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해외에서 고생한 보람도 있었고."


이야기를 듣던 챠밀라가 노인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덧입히며 말했다.


"어르신 말씀에 한국과 우리나라가 다른 상황이란 건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스리랑카 정부는 그때의 한국정부처럼 저희를 그렇게까지 생각할까요? 아닐 겁니다. 믿지 못할 정도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많거든요. 그저 내 가족들이 무사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게 사실입니다.  꿈이란 걸 꾸기 어려운 나라에서 한국행을 선택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어요. 그런 저희에겐 '우선 나부터, 아니 우리 가족부터 잘 살아야 해'라고 이기적인 게 너무나 당연한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입니다."


노인 역시 쟈밀라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에겐 이 말은 해주고 싶었다.


"나부터 잘 살아야 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두 사람한테 미안하지만, 그 나라가 정말 미래가 있을까? 나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아이들, 아이들의 후손들조차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닌 어서 탈출해야만 되는 나라로 남겨질 거예요. 나는 두 분에게 한국의 잘난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도 없을뿐더러 6.25 전란으로 모든 게 쓰러졌던 척박한 나라에서, 여기까지 온건 운이 크게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운이란 게 그냥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소. 밭을 갈아두니까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정착했고 거기에서 싹을 틔우는데, 마침 가뭄 해갈에 우리처럼 해외 송금한 금액이 귀한 물줄기가 되어 주었고, 이제는 과실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나마 우리 후손들이 내 나라를 떠나지 않는 조그마한 이유가 되었지 않았겠소."


노인이 풀어낸 한국의 발전 비밀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다만, 오늘 두 사람이 작성한 자신만의 꿈의 계획 선포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는 고려 대상에 없었다. 도리어 왜 있어야 하지? 가 더 자연스러웠다. 자신에게 이득이 기대하기 어려웠고 여전히 발전 없이 가난하기만 했다. 그러니 자신들이 송금한 돈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노인은 집요한 듯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내 말했다.


"내 오지랖인 건 분명한데, 두 사람의 인성이나 말하는 거 보니 너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니 나를 정신 나간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시오. 내가 건네주고 싶은 말은, 한국의 선순환 비밀을 알아차리고 두 분  신들갖고 있는 꿈에  접목시켜 보라는 거요.

아이들이 떠나고 싶지 않은 나라, 아이들과 아이들의 후손들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 그렇게 당신들의 꿈을 두 번, 세 번 업그레이드시키다 보면, 두 분 모두 아주 먼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목적 있는 큰 삶이기에 그 마저도 매력 넘치고 즐거운 인생이 될 것이요. 내 장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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