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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권 10시간전

42화. 실론의 바람을 타고

콜롬보 카투나야케 공항.

시계를 보니 현지 시간으로 밤 10시를 가리켰다.

도준은 빠르게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늦은 시간임에도 역시나 다랑거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야! 다랑거! 너 여전히 핸섬한데! 잘 지냈어?"

"키는 도준처럼 크진 않아도, 얼굴은 내가 준수했지. 하하. 잘 지냈어? 긴시간 비행기 타느라 고생했겠는걸. 어서 밖으로 나가자 차 준비시켜놨어."


두 사람의 해후도 짧게 마치고 다랑거는 길을 먼저 나서자고 했다.

공항 건물 출입문을 확 열어제끼는 순간, 잊었던 실론의 바람이 도준의 코를 강타했다.


"역쉬. 스리랑카는 이 향기지. 내가 다시 왔구나. 스리랑카여 내가 왔다"

그런 그를 다랑거는 따뜻한 미소바라보고 있었다. 트렁크를 열고 도준의 짐을 넣은 뒤 둘은 빠르게 공항을 벗어났다.


"그래, 돌아가는 날이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조금 더 있어도 될텐데, 2박 3일만 있다가 간다는 게 너무 아쉽다 도준."

"어쩔 수 없었어. 집에서 가족들도 기다리고, 회사일도 만만찮게 쌓여있고. 회사와 가정을 모두 챙기고 사는 나에게 2박 3일이면 어때!? 너무 좋은데 하하!"


도준의 텐션은 어두운 창밖 실론의 열대 바람을 그대로 맞을 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 이순간 한 가족의 가도 아니었고, 한 직장의 은행원도 아니었다. 20대 미지의 나라 스리랑카에 막 도착하던 청년 도준이었다.


"너무 좋다. 다랑거. 스리랑카는 나의 제 2 고향이 맞어. 도저히 싫증이 나지 않아. 언제나 오면 반겨주는 것 같고, 나의 친구들도 많고, 추억도 많고. 그런 곳에 이렇게 비즈니스까지 하겠다고 왔으니. 다랑거 나 완전 스리랑카에 미친 놈 맞지?"

"하하. 너의 스리랑카 사랑은 대단하다는 건 예전부터 알았지. 하지만 다른 사람과 너는 결이 달라. 여행으로 스리랑카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너는 좀 특별하잖아. 현지인과 살았고 거기에서 너가 항상 하는 이야기처럼 무언가를 깨달았고, 쓰나미가 날땐 두발 벗고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러 오고, 심지어 너의 아내 프로포즈를 여기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와,. 도준이 너는 진짜 못말린다 였어. 넌 랑카사람이라고 해도 믿을거야. 차라리 귀화를 하는 게 어때? 하하"


둘의 대화는 오랜만에 그간 서로의 안부와 묵혔던 이야기를 하느라 한 동안 유쾌함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픽미업의 주제가 서서히 나오던 차, 예약했던 호텔에 도착했다.


"다랑거, 그 COO는 나이가 어떻게 되니? 우리하고 비슷한 나이인가?"

"비슷해 82년생이니까 도준이 너가 형인데?"

"그래. 우선 짐을 내가 내릴께. 체크인하고 늦었는데 바로 갈거니 아님 잠깐 이야기좀 할거니?"

"30분 정도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체크인 바로 하고 이야기하다가 방에 올라가는거 어때?"

"좋아. 잠깐 기다려줘"

체크인은 순조로웠다. 도준은 짐을 다시 가지고 호텔 로비 쇼파에 앉아있는 다랑거 쪽으로 움직였다.

다랑거 맞은편에 앉은 도준은 내일 있을 미팅에 대비해서 자신은 어떤식으로 이야기를 할지 준비해온 내용을 다랑거에게 말했다.


"투자회사의 임원은 거절했는데, COO는 개별적으로 너한테 연락을 했다는 게 신기했어. 그래서 그의 마음을 알고 싶었어. 왜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지. 원래 계획은 그 사람 앞에서 바로 물어보는 거 였는데, 내가 너무 조급하게 들이대는 것만 같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그 친구와 우선 친구가 되어야 겠다고"

"엉? 친구가 된다고? 하하. 역시 도준 답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친구가 된다...어떻게?"


다랑거는 도준의 입에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대부분 꼼꼼하게 준비한 내용들을 기반으로 '우리 제품은 너희들에게 어떤 점에서 좋으니, 우리랑 어떻게 협업을 해보는 게 어때?'라고들 하는데, 도준은 내일 있을 미팅때문에 이 멀리 비행기를 타고 왔으면서, 그에게 친구가 되자고 말하겠다고 한다. 다랑거는 도준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어떻게 친구할려고?"

"뭐...너가 나를 아까 이야기 해준것처럼 내가 스리랑카를 왜 사랑하고 여기 사람들을 왜 잊지못하고 사는지, 심지어 우리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위해 스리랑카를 찾아왔는지. 그러다보면 나라는 사람을 그 COO에게 그대로 보여주는것이 될 거고, 그도 나의 이야기에 어떻게든 반응하지 않을까.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다가 너희 회사를 본 이유도 다른 거 없었다. 나에게 스리랑카는 늘 관심이었내가 좋아했던 아이템을 여러나라에서도 가능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리랑카 회사랑 붙여보면 어떨까 했는데. 글쎄 제대로 된 회사 하나가 있었던 거지.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해줘야지."

"그런데 그쪽에서 지금은 관심이 크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심갖는 수준이다고 하면?"

"뭐 그것도 좋아. 여기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고. 너희가 지금은 하지 않더라도 우린 친구로만 지내고 있어도 좋아. 나중에 다른 나라부터 디디박스를 시작하더라도 언제든 스리랑카는 픽미업이 우선 협상자다라고 확인하면 되잖아. 물 흐르듯이 서로가 필요할 때 그때 만나더라도, 친구 처럼 곧바로 일을 진척시킬수도 있는거 아니겠어? 라고 하려고"

"도준 너는 진짜,. 일반 사람은 아니야. 그치 하하. 특별한 나의 친구 도준. 오늘 피곤할텐데 얼른 올라가. 내일 10시쯤 로비로 다시 올께. 미팅장소가 여기서 30분쯤 걸리니까 그때 보면 될 거 같아. 잘쉬고!"


멀어져가는 다랑거의 모습에 도준역시 손을 흔들었다. 그래. 솔직해지자고 해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있는 그대로 그를 만나는 거야. 론의 바람은 여전히 도준 옆을 감싸는 듯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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