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업계는 그동안 사스와 메르스 등으로 수차례 어려운 상황을 겪어왔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19는 기존의 경험치를 훌쩍 뛰어넘는 큰 고비가 될 것임이 점점 분명해 보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러한 비상 상황은 여행업과 관련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방향성에 대한 기대를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지금의 이런 상황과 맞지 않게 공교롭게도 지난 2월은 개인적으로 최대 출장 횟수를 기록한 달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즈음인 1월 말부터 일본 , 멕시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총 7개국 9개 도시로 출장과 짧은 휴가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모처럼 한국에서 주말을 보내며 다녀온 방문지에서 구매했던 물품들이나 여행기록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동시에 지난 한 달여의 여정 동안 있었던 몇 가지 재밌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신기하게도 좋은 기억들이 모두 비행기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어떤 교감 같은 것들이었는데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한 번은 한국에서 발리로 가는 기내에서 식사가 끝나고 승무원이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내 차례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딱 떨어져 버렸다. 승무원은 난처해하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고 재빨리 하겐다즈가 아닌 상대적으로 저렴한 타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매우 미안한 목소리로 “괜찮으시겠어요?” 라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는데 순간 서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후 내리는 마지막까지 친절함을 잃지 않았던 승무원 덕분에 비행기 안의 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 얼마 후 자카르타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는데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착륙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하여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중간에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서 가는 항공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잠시 비행기에서 내렸다가 다시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며 승무원들은 새로 교체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자기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매우 슬프겠지?”라고 농담을 하며 웃었고 잠시나마 당황하고 있었던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슬쩍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승무원의 노련하면서도 배려 넘치는 위트가 매우 인상적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후로도 출장이 길어지며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껴 갈 무렵 이탈리아 국내선을 타게 되었다. 승무원 중 에는 덩치가 매우 크고 강한 인상을 가진 한마디로 한국 배우 마동석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출발 전 안전 데모를 해주시는 마동석 닮은 승무원분이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귀여운 몸동작들을 선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고 순간 지친 몸과 마음에 짧게나마 활력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긴 여정 이어가며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나를 진정으로 웃고 행복하게 해 준 것들은 사물이나 풍경, 음식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과의 감정적인 교류 속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개인적 경험과는 정반대로 근래 우리의 산업은 효율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인력을 최소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반복적이고 패턴화 되는 인간의 업무는 이제 AI가 대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그 활용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모 항공사 RM의 경우 AI를 통한 다이내믹 프라이싱으로 효율적인 가격을 고객에게 직접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콜센터 역시 사람이 아닌 AI 챗봇을 통해 운영되는 경우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먼 미래라고 느껴지지만 AI와 로봇이 결합되면 인간의 일자리는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종종 듣고 한다. 인간의 두뇌와 육체는 절대 컴퓨터와 로봇의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와 오류를 통제할 수 있는 기계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세상이 올수록 기계는 반대로 절대로 가질 수 없을 휴머니티는 더욱 값진 것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어떤 실수도 없이 완벽한 수량으로 준비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한치의 오차 없이 내 손 안으로 제공되었다면 지금의 내가 기억할만한 어떤 여운을 남겨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