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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Jul 07. 2024

동굴의 비유 그리고 자화상

성공회 내동교회에 가는 길에 왜 뒤러 화백이 자화상을 그렸는지 이해를 하였다. 517번(신흥교통)을 타고 가는데, 운전노동자가 손님들이 타는 모습을 보심이 거울에 비치기 때문이다. 운전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을 거울이 담음인데, 뒤러 화백이나 렘브란트 화백도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렸다. 

2024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로부터 부제 서품을 받으신 이레네오 부제님이 사목하시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신포시장에서 과자를 사서 가다. 주일학교는 영국/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신자인 로버트 레이크스가 산업혁명 당시에 도시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학교이다. 

산업혁명이 활발한 당시에 영국에서 도시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처음 영국 임금노동자들이 실천한 노동조합 활동이 노동법으로써 노동시간을 정하는 노동시간 단축, 임금의 최저기준을 노동법으로써 정하는 최저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계급투쟁이다.-, 자녀들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실제 신기한 TV 서프라이즈(MBC)에서 임금노동자들이 출근 시간에, 집에 혼자 남을 자녀들에게 잠자는 약을 먹였는데, 잠자는 약이 아편이라 아편에 중독된 어린이들이 죽은 일을 보도하였다. 그래서 지역 언론사 사업주인 로버트 레이크스가 교원 자격증이 있는 교사를 고용하여 읽기/쓰기와 같은 기초학문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친 교육 역사가 주일학교이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산도, 초코파이 등을 사면서 정리한 생각이다. 

오늘(2024년 7월 7일 (일) 연중 14주일) 복음서 이야기가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한 이야기(마르코 6:1-13)이다. 예수의 형제자매들과 부모를 말할 정도라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는 뜻이지만, “목수의 아들”이라는 편견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경탄하면서도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는 고향에는 활동하지 못하고, 고향 밖에서 활동한다. 제자들에게 너희를 사람들이 배척하면 먼지를 털고 가라는 말씀을 하였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어 고대의 의료용품인 기름을 부어 육신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도록 한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가는 세상에 들어왔다는 뜻을 가진 제자들의 치유행위이다. 생각이 굳은 동네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라는 대안공동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 자신도 생각이 굳어서는 안 되겠다. 

장기용 요한 신부님께서 동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할 때,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주장했다는 논리(동굴의 우상/극장의 우상/전통의 우상 등)을 말씀하셨는데, 성공회 신학자인 동시에 인문학자인 신부님께서 적절하게 인용하심이다.

신부님이 인용하신 비유 중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과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써 인간의 좁은 지성을 비판한 논리를 인용한 비유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동굴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그림자만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그림자만 보고 실재(이데아)라고 잘못 믿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 한 명이 우연히 바깥을 보고 다른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면, 동굴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세상과 다르기 때문에 혼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혼란을 거쳐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간다는 생각이 플라톤이 주장한 동굴의 비유이다.(플라톤 지음, 이환 편역, 《국가론》, 돋을새김) 동네 사람들도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목수의 아들 예수만 생각할 뿐, 예수가 하느님 나라라는 대안공동체를 상상하고 주장할 수 있는 예언자(預言者)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가 인용한 속담처럼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2024년 7월 7일 (일) 연중 1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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