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제주 Jun 06. 2020

직장생활은 맹장처럼

다음 생에는 돌로 태어나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

직장생활에서의 회의감과, 월급쟁이를 벗어나 먹고살만한 특별한 재주가 없음을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오후 반차를 쓰고 드라이브를 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날씨에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를 잔잔히 관조하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사고만 치지 않고 사는 직장생활이 최고가 아닐까라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꿈같은 그런 얘기를 하는 중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장안의 화제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덕분일까.


아 맹장처럼 살아야겠다.


 이미 퇴화하여 중요한 기능이 없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잘라버리지도 않는다. 중요한 기능이 없으니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존재 자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 도 있다.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조용하던 맹장이 맹장염에 걸려서 인간의 몸에 무시무시한 통증을 유발하는 순간 맹장에 대한 태도는 달라진다. 다른 방법은 없다 맹장을 제거해야 한다. 기능이 없으니 애써 공들여 남겨두려고 하지도 않는다.


 직장생활도 있는 듯 없는 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도 모를 만큼 조용히 살다가, 은퇴하는 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어떨까. 통증을 일으켜 제거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사는 거다. 하지만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누군가는 심장이 되고, 누군가는 팔다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다음 생에 태어나면 돌이 되리라 처럼 자조 섞인 얘기 일뿐이다


 사람이 살면서 그렇게 존재감이 약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심장처럼 중요한 장기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가라는 반론이 제기될법하다. 그럼 기능이 지나치게 좋은 장기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선천적으로 기능이 좋은 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알코올 해독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아무리 독한 술을 먹어도 잘 취하지 않고, 숙취도 전혀 없다. 술 냄새만 맡아도 관운장의 현신이 되어 얼굴이 붉은 대춧빛이 되는 전국의 알쓰(알코올 쓰레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분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간.

 주인도 이런 자신의 건강한 간을 자랑하며 한잔 두잔 비워내는 술잔이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건 간의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 간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간 기능이 좋다는 이유로 매일 독주를 무한정 받아들이고, 밤새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우고 있지 않을까? 알코올을 해독할 일조차 없는 알쓰의 간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이런 폭음 속에 이 간은 건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통을 안으로 삭이며 묵묵히 일하던 간이 아프다고 얘기를 할 때쯤이면 간은 이미 망가진 상태가 아닌가

  

 또 매운걸 잘 먹고 좋아하는 사람의 위장은 어떠한가. 매운걸 잘 견딘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불닭볶음면과 캡사이신을 견디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매운걸 못 먹어 순한 음식만 소화시키는 다른 위장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이 위가 계속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야구라는 공놀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야구 역사에서 잘던지는 철완들이 소위 노예처럼 등판하다가 결국에는 혹사의 후유증으로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고 결국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수 없이 목격해왔다. 그렇게 유망주와 에이스들이 한 명 두 명 사라지는 팀이 암흑기에 들어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키워낸 유망주보다 부상으로 사라져 간 선수의 이름이 더 잘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건강하고 기능이 좋을 때부터 관리를 잘해줘야 하는데, 그게 참 안된다. 당장 친구들과 재밌는 술자리도 가져야 하고, 이번 시즌 우승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이 업무를 해야 하니까.


 직장생활이라고 별반 다를까. 기분 탓이겠지만 많은 일을 많이 하면, 그에 대한 보상은 더 많은 일로 돌아온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는 거의 붙지 않는 저금리 시대인데, 일은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일이라는 이자가 풍성하게 붙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고, 눈덩이처럼 커진 일을 결국에는 감당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눈덩이처럼 커진 일을 꾸역 구역 해내고 나면 "거 봐 할 수 있잖아"라는 격려에  "라떼는 말이야"가 보너스로 붙기도 한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인데다 드라마 "미생"에 나온 유명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회사는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이 시대의 모든 직장인들 힘냅시다. 사실 힘내자는 말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수영을 배우면서 느낀 점은 물에 뜨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끔은 힘을 좀 빼고 흘러가는로 살아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고요한 도순다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