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이 색이 아닌 듯, 요즘 나는 내가 아니다.
시간에도 명도를 정할 수 있다면 내가 보내는 근래나의 시간은 명도 중 가장 낮은 검은색이다.
바깥세상은 날이 따뜻해지며 명암도 분위기도 밝아져 가는데
나는 여전히 어둡고 칙칙하고 암흑처럼 까만 검은색이다.
지난 한 달은 내 몸 안에 토네이도가 24/7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오른쪽으로 휘몰아쳤다가
잠시 쉬는가 싶더니 이내 왼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눈을 감아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밥을 먹어도 허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고독과 막연함에 고통스러워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자기 계발이나 자존감 회복과 같은 콘텐츠를 찾았고 그런 걸 볼 때마다 나오는
반복적인 조언과 어쩌면 뻔한 말들을 머리에 억지로라도 집어넣어본다. 백 번 천 번 머리로는 '맞아, 이렇게 해야지. 처절하게 달려야지, 후회 없이.' 생각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고, 발이 떨어지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이 얼어붙었다. 해동 버튼이 있다면 강제로 꺼내어 돌려버리고 싶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그냥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어두운 터널 안은 생각보다 끔찍하고 어둡고 춥고 외로우며 나는 심지어 야맹증이다.
보이는 게 없다. 막연함에서 오는 우울의 깊이가 이렇게 아픈 것 인 줄은 몰랐다.
단 한번도 나의 과거를 원망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편집 기능이 있다면 언제부터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당장이라도 선생님께 새 도화지를 달라고 손을 들고 싶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받은 새 도화지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거란 생각에 더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다. 사는 방법, 웃는 방법, 성취하는 방법, 이야기하는 방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내가 되는 방법.
검은색은 사실 색이 아니다. RGB 0,0,0으로 색깔을 표현해내는 빛이 아예 없는 상태이다.
나는 지금 검은색과 같다.
하늘이 하루 종일 뜨고 있던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면, 그 어둠의 커튼을 덮고 나는 더 아래로 깊게 뚫어 놓은 승강기를 탄다.
어떤 날은 지하 3층, 어떤 날은 지하 13층까지도 내려간다. 설명할 수 없이 차분해졌다가 이내 마음속 작은 청설모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불안의 도토리들을 손에 들고 어느 한쪽에 정착하지 못한 채 온 숲을 돌아다니다 이내 지쳐 잠이 든다.
아 - 오늘 밤도 청설모는 집을 구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