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우개연필 Nov 22. 2017

시간을 뜨다

코바늘을 막 시작한 초보의 코바늘 찬가

요즘 새로이 시작하여 흥미를 잃지 않고 있는 활동, 하루의 시간 중 적지 않게 투자하고 있는 활동은 단연 코바늘 뜨기이다. 유튜브의 '디어 코바늘'이라는 연재를 구독하며 거기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따라 하고 있다. '디어 코바늘'을 올리는 사람은 스스로를 '디어'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여성이 시간을 들여 그 영상을 만들고 업로드하여 많은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인 나도 큰 어려움 없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쉬운 기법만을 이용하여 각종 소품을 만들어 보여준다.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유듀브 업로더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무엇이든, 정말 거의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배우지 못할 분야가 없어 보인다. 


처음 시작하기 전 영상을 가만히 보다가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서 시작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만든 것은 가장 쉬워 보이는 남편의 넥워머와 핸드 워머, 그리고 돌입한 것이 아기 모자, 손싸개, 덧신이다. 다음 도전과제, 그러니까 오늘부터 들어갈 소품은 아기 카디건이다. 어제 만든 덧신은 그녀의 설명대로 만들고 나니 신생아에게 신기기엔 좀 커 보였다. 그래서 그녀의 설명을 응용해서 사이즈를 줄이는 데 성공하기까지 해서 더욱 뿌듯하다. 물론 막상 신겨보면 그녀의 설명대로 하는 편이 낫을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건 실용적인 목적이라기보다는 이걸 만들고 있는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니, 내 맘대로 하기로 한다. 




코바늘 뜨기의 가장 좋은 점은 단순노동이라는 점이다. 손을 움직여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언가가 만들어져 있다. 물론 중간에 기법을 바꾸거나 다른 작업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가느다란 실로 면을 만들어내는 작업, 1차원의 형태에서 2차원의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다 보니 반복이 필수적이다. 한 가닥의 실이 한 면이 되고 그 면들이 이어져 3차원의 완성품이 된다. 그 과정에서 들어가는 것은 내 시간과 소근육을 사용한 노동이다. 단 한 땀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은 절대 없다. 내가 손을 놓으면 그 자리에 10년이고 100년이고 멈춰 있을 작업물. 그리고 내가 손을 움직이면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새로운 모양. 이런 재미가 코바늘에 가득하다. 어쩌다 생기는 우연 같은 것도 없고 실패의 원인도 명확한 작업이다. 확실성이 보장되는 일이라 안정감마저 느끼게 된다. 물론 내 실수로 망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실수의 원인, 실수한 바로 그 지점을 명확히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이고 확실한 작업이다.  모자를 처음 만들 때, 디어 씨가 사용하는 실의 굵기와 다른 것을 사용하면서 치수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첫 작품은 사오정 모자를 만들고 말았다. 실을 풀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와 그냥 두고 가끔 보면서 웃는다.




나는 요즘 이 단순노동에 빠져 있다. 따뜻한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코바늘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면 그림 속에서나 보던 할머니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따스함도 느껴진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에 참 좋은 작업이다. 말 그대로 무언가를 생산하게 되니 말이다. 적절히 머리를 사용하면서도 손을 열심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태교는 둘째치고 내 머리가 좋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된다. 그러다가 좀 지칠 때쯤 옆에 있는 책을 집어 들어 읽기도 하고, 앉아 있기만 해서 힘이 든다 싶으면 소파에 그대로 눕기도 한다. 여름이었다면 코바늘이 좀 덜 어울렸을 수도 있으니, 임산부로 겨울을 나게 된 것은 참 다행이다. 


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첫눈과는 달리 제법 쌓여간다.  눈이 내리면 찾아오는 고요함 속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오늘 시작할 카디건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시도한 것 중 가장 거대한 작품이다. 거대하다고 해봐야 두 손 가득 올라오는 귀여운 사이즈겠지만 말이다. 카디건을 시작하고, 어제 도착한 돈키호테를 펴 들어 읽기 시작하고, 점심엔 돼지고기를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 먹자. 오늘의 소박한 계획. 이 정도만 다 실행해도 좋을 하루.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날의 김찌찌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