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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Dec 01. 2021

프렌치 오크통 VS 스틸 탱크통

" 와인의 깊은 풍미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

포도라는 원재료의 맛과 향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에는 어떻게 숙성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크게 나눠 두가지 방법을 쓰게 되는데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숙성을 하거나 아니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조에서 숙성을 한다.


와인을 얼핏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나무통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지도 모르나.

신세계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는 일반적이다.

꼭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맛을 위해서 오크통을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크가 바로 나무이다 보니 와인의 맛을 배가 시킬 수도 있고, 오히려 와인의 맛에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깊은 풍미와 단단한 구조를 지닌 보르도의 레드 와인들은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서 와인의 특징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데

그래서 빈티지를 따지면서 올드(old) 빈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다소 영한 (young)한 와인은 꺼리게 된다.

오크통 숙성을 길게 할 수록 타닌감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병입 후 2차 숙성을 거쳐 좀더 부드러운 맛으로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품종에 따라 스테인리스 스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생기발랄한 미네랄리티와 풋풋한 산도를 즐기는 화이트 와인에는 오크의 향이 무겁게 느껴지고 산미에 방해가 된다.


쇼비뇽 블랑 같은 경우는 열대 과실의 푸룻티함과 시트러스 같은 산미가 있기에 대부분 스테인리스 스틸조에서 차갑게 숙성한다.


샤도네이 같은 경우는 지역에 따라 와인 메이커에 따란 스틸조를 쓰냐 오크통을 쓰느냐를 결정한다.

와인의 풍미가 오크에서 비롯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프렌치 바리크, 즉 오크통을 선호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오크에서 숙성되는 것이 아니라 60%는 오크통 40%는 스틸조 등의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오크의 과숙성을 방지하고자 와인 메이커마다 합리적인 비율을 선택하는 것이다.

로버트 몬다비의 화이트 와인에는 퓌메 블랑이라는 말을 일부러 쓰기도 하는데 바로 오크의 훈연된 향을 입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프랑스 같은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이 오크의 향을 중요시 할 것 같으나

사실은 반대이다.

요즘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와인이 더욱 오크 향이 짙은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고는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오크티백을 사용한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며 뇌피셜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다.

미국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참나무통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아닌 참나무를 쪼개어 오크칩을 만들어 티백으로 우려내는 것으로 절충했다.

물론, 모든 메이커가 이렇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대중적인 브랜드의 저렴한 와인들은 이런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프렌치 오크가 가격이 비싸고, 와인의 맛을 숙성하는데도 특별히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기에 만들어진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값싼 방법을 소비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맛은 정직하다. 손맛, 즉 들인 정성 만큼의 품질이 나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우려낸 오크향이 과하여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값싼 헤이즐넛 커피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향이 원두커피가 아니듯이 말이다.

와인은 포도 자체의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고집스런 철학을 지키는 양조 메이커들은 보다 세심히 포도를 정성껏 가꾼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땅, 즉 떼루아 이기에 밭을 고르고 햇볕을 제대로 쬘 수 있게 또 수분을 잃지 않게 나무를 돌본다.

결국, 이런 정성을 소비자들은 믿고 와인의 명가, 명품 샤또의 와인을 구매한다.

양조자의 철학이 깃든 와인의 신념을 소비자가 가격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와인의 가격은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있다.

명품 샤또들의 가격이 수 백만원에서 경매가 수 억원까지 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가장 정직한 것이 최고의 마케팅이 되는 것이고 입맛 보다 정확한 것은 없다.

좋은 땅에 좋은 포도를 심어야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가 사는 환경, 내가 가진 인성, 그것이 나의 가치가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환경은 운명처럼 결정되어진 것은 아니다.

내가 밭을 거르고 양분을 주면 떼루아가 만들어질 것이고, 나의 인성도 가지치기를 하면서 좋은 새순이 자라나기를 기다린다면

그에 보답하여 맛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풍년을, 성공을 기약하고 싶다면

나의 밭을 가꾸는 일 부터 시작해본다.

농사짓는 이에게 농력에 따른 일기가 중요하듯이

내년도 달력에는 어떤 일정을 추가해볼지 고민해 봐야할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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