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빙 창업 스토리
가을 단풍이 한창인 서울숲에서 김종찬 사장(이하 김 사장)과 만났다. 20대 중반인 김 사장은 앳된 얼굴과 달리 사업 얘기를 할 때면 눈빛이 달라졌다. 흡사 춤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프로 댄서들이 춤이 시작될 때 눈빛이 확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김 사장은 시종일관 확신 있는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웹툰 ‘미생’에서 사회 초년생인 인턴사원 둘을 앉혀 놓고 직장 생활에 잔뼈가 굵은 선 차장은 ‘기획서를 왜 쓰는 것 같냐?’고 묻는다. 멀뚱히 쳐다보는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선 차장은 기획서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쓰는 거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기획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가?’ 선 차장의 질문이 이어진다. 자문자답하듯 선 차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자신이 설득되지 않은 기획서를 올리니 그것을 읽는 사람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사업에서의 성패는 자기 확신에서 출발한다. 김종찬 사장이 그 확실한 증거다. 설득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그 사람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 태도를 손님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이것이 장사의 묘미이자 무서운 점이다.
막상 장사를 시작하려고 보니 자본금이 부족했다. 대출을 받았음에도 턱없이 부족한 자금 사정 탓에 김사장은 셀프인테리어에 도전했다. 실제로 매장에 가보니 인테리어가 엉성했다. 손님들도 다른 건 다 만족스러운데 매장 인테리어가 아쉽다는 후기를 남기곤 한단다. 되새김질하듯 말하는 김종찬 사장의 표정은 결연해 보였다.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락없는 프로 장사꾼의 모습이었다.
김 사장은 학창 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남달랐다. 유치원 시절부터 꿈이 요리사였던 김 사장은 조리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꿈에 한 걸음 다가선다. 고교 때는 요리 실습과 요리 경연 대회에 나가 경험을 쌓는 일에 집중했다. 덕분에 요리 경연 대회 나가 금메달을 따기도 했고 조기 취업에도 성공했다.
명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꼴로’에서 김 사장의 요리 이력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년 3개월 동안 이탈리안 요리의 기본기를 익힌 김 사장은 쉬는 날에도 끊임없이 서울 장안의 내로라하는 파인다이닝 매장을 찾아다녔다. 음식을 맛보고 기록을 남기고 쉐프를 직접 만나 안면을 텄다. 그런 인연으로 입대 전에 몇 달간 소문난 파인다이닝에서 견습 기회를 얻고 제대 후에는 미쉐린에도 소개된 면 전문점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성수에 입성한다.
성수에서 보낸 3년은 김 사장에게 사업의 기반이 마련되는 시기였다. 샤퀴테리 육가공 전문업체인 ‘세스크멘슬’에서 일한 덕분에 김 사장은 스페인산 생햄의 최고등급인 베요 타요 타 스페인산 생햄부터 프로슈토까지 다양한 생햄을 빙수에 올리는 과감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몇 차례 거듭된 실험 끝에 프로슈토와 멜론이 올라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뿐인 프로슈토 멜론 빙수가 탄생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어낸 것은 버릴 것이 없다는 교훈은 김사장의 일화에서도 되풀이 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한 대학의 졸업 강연에서 이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학부 때 우연히 영문 폰트에 관한 수업을 듣게 된 잡스는 훗날 애플 컴퓨터 폰트를 만들 때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한다. 졸업 연설 끝에 잡스는 우연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필연으로 연결되어 모자이크를 완성했던 순간을 감동적으로 회상한다.
지금은 그 쓸모를 다 알 수 없는 일도 나중에는 선명하게 그 의미가 드러난다. 우연이란 조각들이 모여 필연이라는 작품을 빚어내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폰트와 김 사장의 프로슈토처럼 말이다.
메뉴를 개발하고 가게 이름을 지으면서도 김 사장은 끊임없이 SNS에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MZ 사장의 당찬 도전에 SNS 지인들은 아이디어를 보태고 응원을 보냈다. 알음알음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기댈빙’이란 가게 이름을 지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 관계, 장소를 표방한 ‘기댈빙’이 성수의 사랑방 같은 곳이 되기를 김 사장은 꿈꾼다.
고대 근동에서는 나그네가 낯선 동네에 가면 딱히 머물 만한 곳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고대 근동의 사회에서는 환대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동네에 찾아온 나그네를 어느 집이든 환대하면 자신도 다른 동네에 갈 때 환대받으리라는 상호 신뢰가 굳건히 자리잡힐 때만이 안전한 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생 또한 여행이다. 인생길에 잠시나마 쉬어 갈 수 있는 환대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은 김 사장의 바람은 현실이 되어 성수에서 사람들 사이에 관계의 꽃을 피우고 있다.
‘기댈빙’은 이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났다. 계절적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사업적으로 겨울을 나야 할 때다. 사시사철을 난 적 없고 삼 년을 한 장소에서 버텨 본 경험도 없이 사업 성공을 논하는 것은 섣부르다.
‘러빙핸즈’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에 초대받은 김 사장은 MZ 세대들과 만난 자리에서 왜 성수에서 빙수 가게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성장통을 경험한 초보 창업가인 김종찬은 이때까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행복한 경험을 동네 작은 사랑방인 ‘기댈빙’에서 나누고 싶습니다.”
자리를 가득 메운 MZ 세대 예비 창업가들은 강연이 끝나자 김 사장과 사진을 찍고 SNS 맞팔을 했다. 강연 후에 들은 얘기로는 이때 맞팔을 한 사람들이 어느새 찾아와 강연 후기까지 남겼다고 한다. MZ는 연결되는 방식도 속도도 다르구나! 내심 감탄했다.
*이번 인터뷰 기사는 제가 필진기자로 참여하고 있는 '사례뉴스'에 일주일 전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례뉴스'는 현장지식과 실천사례를 공유하는 비지니스 언론사입니다. 앞으로도 칼럼과 인터뷰 기사를 한달에 한 두번 정도 '사례뉴스'에 기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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