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달 Jul 15. 2022

어느 시점에서 봐도 난 소개받을 성격은 아니야

자만추를 고집하는 사람이 이성을 소개받는 일은 흔치 않다. 나와 맞는 사람일지, 생각하는 가치관이 비슷할지, 내외적 이상형이 맞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나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간다는 게 자만추인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일지 알기 위해서 대화를 한다.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어떤 성격인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대화'다.


친구들 사이에서 언변도 좋고 대화의 흐름을 잘 이끌어가는 나여도 처음 보는 이성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건 힘들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대화는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소개받는 이성에게 하는 대화는 재미와 흥미뿐 아니라 관심, 공감, 설렘 그리고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목적이다. 너무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어렵다.




1년 전 나는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동생이 있다며 친구가 서로 잘 맞을 것 같다고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면서 여성분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여줬다. 


"음, 우리 소개받는 건 없던 일로 할까?"


농담 삼아 말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은 외적인 조건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성격이 잘 맞을 수 있기도 하고 친구가 적극적으로 소개받으라고 하니 궁금한 마음에 만나보기로 했다. 실행력이 강한 친구는 바로 카톡 단톡방을 만들어 소개해줬다.


안녕하세요. ○○ 소개로 받은 ○○○이라고 합니다!


이 어색한 분위기와 뻣뻣한 말투. 대화는 처음 보는 사람의 배경을 알아가기 위해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침묵을 없애기 위해 신중하게 카톡을 하고 보내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고 보냈다. 매너와 예의를 지키기 위한 나의 몸부림은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나보다 두 살 어렸다. 서울에 살고 INFP이며 알바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카톡으로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어봤지만 나에게 도움이 됐던 정보는 MBTI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 중 INFP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그 사람들의 행동을 봤을 때 낯가림이 심하고 말주변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들 한에서 말이다.)그리고 놀라운 건 INFP랑 내 MBTI랑 잘 맞는다고 한다.


난 ENFJ다. 낯가림이 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어려워 하진 않는다. 그래서 말이 많지 않은 INFP랑 잘 맞는다고 하는가 보다. 아니, 그럼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면 나 혼자 말하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 초밥 좋아하세요?


약속 날짜와 장소를 정했다. 그녀가 사는 동네에서 만나기로 했다. 원래는 나와 그녀의 중간쯤 되는 거리에서 만나려고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내가 그쪽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경기도민이라 그녀가 있는 서울까지 1시간을 가야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날 곳은 초밥집이었다.


서로를 만났다. 어색한 인사와 함께 메뉴를 정하고 초밥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이성과 마주 보고 음식을 먹으니 머릿속에 존재하는 모든 세포들이 멈춘 듯했다. 대화를 해야 하는데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TV프로에서 했던 '아바타 소개팅'이었다면 누군가 나에게 명령을 해서라도 대화할 수 있게 도와줬을 텐데 말이다.


어색한 게 싫어서 주접떠는 나와 달리 그녀는 굉장히 차분했다. 여유 있고 긴장조차 없어 보였다. 만남을 이어가려는 마음의 무게가 나만 무겁나? 평소와는 달리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 가서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어색했다.


원래 말이 없는 건가, 아니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궁금한 게 없는 걸까. 대화가 통하지 않다 보니 내적인 매력마저 없어졌다. 머릿속에 팽팽하게 늘어져있던 줄이 끊어진 기분이다.




그날 저녁 비가 매섭게 내렸다. 하늘은 달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어두웠고 도로에 움푹 파인 웅덩이로 내리는 빗줄기는 날카로웠다. 우산 사이로 맞는 비는 내 마음까지 적시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헛수고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집에 가는 동안 수없이 생각하고 다짐했다. 이제는 소개 따윈 받지 않겠다고.


처음 보는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이름부터 성격,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 최대한 많은 것을 내 머릿속에 입력해놓아야 한다. 앞으로의 인연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한번 보고 안 볼 사이로 남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한 번으로도 힘든데 몇 번을 반복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물론 대화가 잘 통한 사람을 만났으면 지금 생각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목적이 있는 남녀가 한 자리에서 대화를 해야 하는 자리를 계속 어려워할 것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3인칭 시점에서 보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든 난 소개받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차라리 운명론자가 되어 드라마틱한 인연을 기다리는 게 낫다. 



작가의 이전글 연애는 필수라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